법무연구 3권(2012.3)

304 법무연구 제3권 (2012. 4.) 고 새로 文券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토지매매를 함에 있어서 原券 또는 文券이란 일종의 權利證을 만들어 준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官에서 토지매매를 인정 해 준 것이다. 5)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인정되었던 民田은 이를 賣買, 貸借, 典當, 相續할 수 있었으 나, 조선왕조의 개국 초에는 科田法에 의한 전제개혁의 실시 초였기 때문에 상속을 제외한 일체의 토지처분행위가 금지되었다. 6)7) 실제로 토지의 거래는 이러한 금령에 도 불구하고 은밀히 행해졌으며, 만일 이것이 발각되면 매매대금을 官에서 沒收하였 다. 그러나 토지를 매매하는 자들은 대개가 부모의 장사비용, 채무변제를 위하여 혹 은 가난하여 처분하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는 부득이한 처지에 있는 자들었으므로, 이 처럼 가난한 자가 부득이한 사유로 매매를 한 경우에는 매매대금을 沒收하는 것은 가혹한 것이었고, 8) 또한 앞선 시대부터 여러 가지 방법으로 私的所有關係가 인정되 고, 또 移轉되어 온 사회적 관행 때문에 이를 금지 일변도로 묶어두기에는 한계가 있 었다. 9) 결국 조선조 사회는 世宗 6년(1424년) 3월에 이르러 전답매매금지 규정을 현실에 맞게 고쳐서 전답매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게 되었고 10) , 이에 토지의 매매 를 허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결국 과전법상의 전면적인 토지매매금지 규정이 무너지 고, 제한적이지만 법적으로 토지의 매매가 허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1) 5) 金貞洙, 不動産登記制度改善 에 관한 硏究, 경성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1996, 35면. 6) 朴秉濠, 韓國法制史拷 , 법문사, 1974, 13면 ; 朴秉濠, 전게논문, 2면. 7) <高麗史>78, 食貨1, 田制, 科田法 條文, “...佃客 毋得將所耕田 壇賣壇與別戶之人 .” 경작자(佃 客)는 그가 경작하고 있는 토지를 다른 戶의 사람(別戶之人)에 마음대로 팔거나 함부로 줄 수 없다(李在洙, 조선중기 전답매매연구 , 集文堂, 31면) 8) 世宗 6년에 京畿監司가 上啓한 내용 중에 “무릇 田地를 放賣한 사람은 .... 모두 어찌할 수 없 는 사정인데, 그 값을 모두 관에서 몰수하니 원통하고 억울함이 적지 아니합니다......”, <世宗 實錄>23, 세종6년3월 己亥條 ,“京畿監司啓 凡 田地放賣人....皆綠不得已之事而其價錢倂皆沒官 菟 抑不少...”라고 하여 어찌할 수 없는 사정으로 전지를 방매하였음에도 그 매매대금을 관에서 모두 몰수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세종6년까지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田畓의 매매를 불법으로 처리하여 과전법의 법정신을 구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李在洙, 전게서, 35면) 9) 앞선 고려시대의 토지겸병과 토지 사유화 등에 관해서는 고려대민족문화연구소 편, 한국문화대 계II(정치 경제사편), 1965, ; 姜晉哲, 한국중세토지소유제연구 , 일조각, 1989, 174면 이하 ; 李鍾 吉, 朝鮮社會法史攷 , 동아대학교출판부 , 2007, 39면. 10) <世宗實錄>23, 세종6년 3월 己亥條 참조 11) 이미 세종5년부터 漢城府內 大小人員家基의 교역상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軍器馬匹의 정제와 관련하여서도 빈한한 자는 가산을 소진하고 전토를 매매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를 충당하고 있 음을 알 수 있다(世宗實錄 5년(1423) 4월 辛未 및 동 5월 丁亥條를 참조함. 이하 李鍾吉, 전게 서, 39면 주 48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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