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연구 3권(2012.3)
조선시대 부동산소유권 증명제도에 관한 고찰 / 황정수 305 한편, 조선시대의 토지소유권은 文書에 의하여 확정되고 證明되는 것이 원칙이었으 며, 이를 국가에 의해 확정, 보호되어 분쟁이 발생한 때에는 그에 대한 해결기준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것들로는 田案, 量案, 收租案, 柃 記 등의 公簿와 權原書類와 같은 私的인 것들이 있었다. 12) 그런데 量案은 물론 收租案과 같은 公簿에는 소유자의 변동 사항이 기재되지 않고 현재의 소유자만이 기재되었다. 따라서 개인은 보통의 경우 立 案, 立旨, 完文 등 관청에서 발급한 증명서나 사문서인 文記를 가지고 소유권을 증명 하였다. 따라서 매매나 상속 등으로 인한 소유권의 이전에 있어서 그 권리의 이전이 합법적이고 진실한 것임을 증명하는 소유권증명으로서 文記와 이를 관청의 신고하여 증명을 받는 立案節次가 중요시 되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조선시대의 소유권 증명제도로서 계약서 역할을 하는 문서인 文記 13) 와 계약 후 관청에 신고하는 立案制度를 중심으로 하여 근대적 부동산 등기제 도가 시행되기 전까지의 우리 전통법에서의 소유권 증명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文記 에 의한 증명 1. 文記의 意義 및 種類 文記라 함은 土地, 家舍 14) 기타 재산상의 권리를 양도하는 證書 또는 土地, 家舍 등 의 처분에 관한 계약서 및 상속을 내용으로 하는 財産處分文書를 말하며, 文券 또는 明文 15) 이라고도 한다. 16) 文記는 內容에 따라 許與文記와 分財文記 및 和會文記 17) 로 12) 禹柄彰, 조선시대재산법 , 세창출판사, 2006, 256면. 13) 조선시대 전답매매문기는 매매당사자가 그 본인이든 대리인이든 매수하는 사람에게 매도하는 사람이 증인 및 필집과 함께 서명하여 넘겨주는 것으로 오늘날 쌍방이 갖는 매매계약서와는 달리 일방문서였다 .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이 賣買文記만으로도 매매가 사실상 인정되게 되므 로 이것 자체가 흔히 말하는 ‘땅문서’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 현행 부동산등기에서 1988년 에 檢印制度가 시행되기 전에는 실제 거래계에서 매매계약서와는 별도로 이른바 ‘賣渡證書’ 라는 것을 작성하여 등기원인증서에 갈음하여 제출하였는데 이 매도증서도 文記와 비슷하게 어떤 부동산을 얼마의 대금을 받고 매도하여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문언을 적어 매도인이 기명 날인하여 매수인에게 주는 증서였는데 현행 검인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도 이를 이용하였다. 14)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家屋이라는 용어보다 家舍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경국대전 에서부터 光武 연간의 家契에 이르기까지의 법률과 규정에서 家舍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隆熙 연간의 토지. 가옥증명규칙 이후 家屋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이건수, “통감 부시기토지. 가옥 증명문서에 관한 고찰”, 법사학연구 제37집, 2008, 72면 주1 참조). 15) 土地文記는 매매와 관련한 還退明文이나 許與文記는 물론 깃기나 秋收記 등 각종 토지와 관련 된 포괄적인 문서라는 의미를 띠므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田畓賣買"明文"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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