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연구 3권(2012.3)
312 법무연구 제3권 (2012. 4.) 婢일 때에는 그가 그의 상전을 대신한 賣渡인지 본인의 것을 賣渡하였는지 유의하여 야 하는데, 賣渡人란에 그냥 ‘私奴00’,‘奴00’로 된 文記도 매매계약서상에 ‘上 典主牌字導良’과 같은 문구가 있으면 대개 그의 상전을 대신하여 매도한 문건이 다. 47) 또 증인과 보증의 신분과 이름을 기재하고 각각 手決하거나 手寸한다. 筆執은 이름 밑에 手決하였다. 手決은 주로 양반층이 하였지만 良人은 물론 奴婢도 글자를 아는 경우에는 手決 48) 하였다. 이와 같이 기재하여 田畓賣買文記를 작성하고 手決을 한 후 이를 그 부동산에 관한 權利傳承을 증명하는 모든 文書(舊文記)를 함께 매수인에게 인도하는 것으로 양도절 차가 종료되고, 매수인은 新文記를 舊文記에 連繼해서 보유하며, 앞으로는 이로써 자 기의 소유권을 입증하게 된다. 49) 였으며, 賤人(奴婢)이나 승녀, 양인 이하의 부녀는 手寸하였다. 조선시대의 사문서나 관문서에 나타난 수결의 형태는 자기의 이름이나 직함 아래에 한자를 변형하여 자필로 쓴 기호의 모습 을 띠고 있다. 수결의 모습은 시대적 흐름과 사회상의 변화에 따라 혹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 라 형태, 방향, 크기, 강도, 속도, 필순, 조화 등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수결의 형태를 필 체의 특징에 따라 手決연구가인 鄭炳浣선생은 二別體, 楷書體와 行書體, 明朝體, 用體, 刻押體 로 분류하고 있다(沈羲基, 韓國法制史講義 , 三英社, 1997, 34면). 45) 賤人이나 奴婢들은 手決을 하지 않고 手寸를 하였는데, 남자는 手寸이라 하여 左手, 즉 왼쪽의 가운데 손가락 마디를 그려서 표시하였고, 여자는 右寸, 즉 오른쪽 손가락 마디를 그렸다(沈羲 基, 전게서, 34면). 한편 양반가의 부인은 거의 ‘00氏’로 표현되며 16세기에는 인을 사용한 예가 있으나, 17세기에는 거의 없고 전반적으로 여자가 賣主로 작성한 예가 드물었다. 이는 16 세기에 비하여 17세기에는 여자가 전답매매와 같은 재산권을 거의 행사하지 않는 것이 관행되 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본다(李在洙, 전게서, 78면). 46) 印章은 똑같은 문양을 수많은 문서에 그려 넣을 수 있었기에 인장에는 단 하나의 ‘존재’가 수많은 ‘존재들’을 영구히 지배하는 ‘신’의 이미지가 새겨졌기에 고대부터 세계전역에서 神物롤 상정되어 왔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관료제와 어울려 ‘왕권은 신이 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도장을 관료제의 상징으로 만든 주요인이었다 . 전통시대에는 관료제의 위계에 따라 도 장의 이름을 달리하여 황제의 것은 璽(새) 또는 寶(보)라 했고, 제후의 것은 章(장)이라 했으며, 그 밖의 것은 印(인)이라 했다. 이들을 넓은 의미에서 官印이라하는데, 문서에 관인을 찍는 것 은 그 문서에 ‘명백하며 되돌리수 없는’ 官의 의지가 담겼음을 의미했다. 관직이 없는 사람 들은 ‘권리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됐기에 私印은 장서인이나 낙관처럼 소유나 창작의 주체 를 표시하는 구실만 했다. 조선시대에는 공문서에 私印을 직지 않고, 手決이라는 붓글씨 사인 (sign)을 썼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手寸이라 하여 자기 손가락 모양을 그려 넣었다. 47) 李在洙,전게서, 77면. 48) 賣買文記에 手決을 하는 것은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글을 아는가의 기준이 된다. 49) 郭潤直, 不動産登記法 , 박영사, 1997, 4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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