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법무사 9월호

대한법무사협회 71 설악산은설악산대로금강산은금강산대로자 태가있으리라생각한다. “만물상대자연을사람아묻지마라 눈도미처못보거니입이능히말할손가 만물상알려거든가보소하노라.” 라는글귀로대신하고싶다. 우리 나라는 유난히 대산(大山), 대천(大川)이 많아한민족은산에서태어나산으로가는, 산과 더불어인생을시작하고마감하는민족이다. 역사적으로보아도명산인금강산은우리민족 에게산 이상의 정신적상징이며민족을하나로 묶는구심체가아닌가한다. 주위에서금강산관광간다고하면농담삼아북 한에핵개발하는데왜도와줄려고하느냐하지만 숙소인금강산호텔뒷마당에서작업하는북한주 민들을보니옷 입은 것하고얼굴모습이너무나 안스러워그늘진북한사람들에게도움이되었으 면하는생각도든다. 하루속히남북통일이되어검문,검색없이자유 롭게왕래할수있다면얼마나좋겠는가? 현재는 외금강중 일부만개방되어 있지만앞 으로내금강등이 개방되면금강산의제일 높은 비로봉(毗盧峯)(1,63미8 터)을꼭등반하고싶다. 비로봉 올라가는 길은 금사다리, 은사다리를 꼭거쳐야한다고한다. 올라가는바위가아침에는은빛으로보이고저녁 에는금빛으로보여붙여진이름이라고한다. 정상비로봉밑에는 용마석과신라 최후의왕 자인마의태자(麻衣太子) 무덤이능이라기보다는 너무초라한무덤이있다고한다. “태자의 몸으로마의를 걸치고험산에 들어온 것은신라의천년사직을망쳐버린비통을한 몸 에 짊어지려는고행이었으리라. 울며소맷귀 부 여잡는낙랑공주의섬섬옥수를뿌리치고돌아서 입산할때에대장부의흉리(胸裏)가어떠했을까? 천년사직이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태자가 신지다시 천년이지났으니유구한영겁으로보 면천년도수유(須臾)이던가? 고작칠십생애에희로애락을싣고각축하다한 움큼부토(腐土)로돌아가는것이인생이라생각 하니 의지없는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 愁)롭다.” 1957년경고등학교국정국어교과서에실린정비 석(鄭飛石)의산정무한(山情無限)의일부분이다. 힘들기는하였지만중간에포기하지아니하고 천선대를다녀온것을다행으로생각하며하산길 내내 어릴적 집에 있던 금강산기념 사진첩들을 보면서나도성장하면금강산을다녀오겠다고한 기억과고등학교국어담당교사님의산문산정무 한(山情無限) 명해설을 되새기면서 하산하니 그 좋았던날씨가갑자기 변하여비가 오기시작하 였다. 천만다행이었다. 금강산의별맛인온정각에북한측이직접운영 하는옥류관의금강산분점평양쟁반냉면을먹으 면서때묻지않고 자연그대로금강산지역이오 래 보존되고하루 빨리통일이이루어지기를기 원하였다. 유 홍 준│법무사(서울중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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