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법무사 12월호

대한법무사협회 67 ▶▶ 자유를찾아서지구한바퀴 을 연상하고 60대의 미국, 30대의한국으로 비교 하여보았다. 6. 백악관다녀오기 워싱턴D.C에. 있는백악관에가보니밖에서사 진만 찍으라고 하여 백악관 안에까지는 들어가지 못했다. 백악관정문앞에서는약30여명의미국인 들이 무대를 설치하고 확성기를 통하여 부시대통 령의이라크침공을규탄하는집회를열고있었다. 그러나누구하나관심을가져주지는않는것처럼 보였다. 놀랍게도워싱턴D.C. 내에거주하는사람 들 중 흑인의 비율은 60퍼센트가 넘는다고 하고, 흑인대다수가먹고살기힘든사람들이라고한다. 그런데 백악관 관광을 마치고 돌아나오다 보니 그옆에‘베트남전한국군참전기념탑’이설치되어 있었는데, 벽면에‘Freedom is not free.’라고 적혀있었다. 그것을본 일행중 한 사람이나에게 저문장이무슨뜻이냐고묻는다. 필자는엉겁결에 “자유는거저주어지는것이아니다. 노력을해야 만 얻을수 있는것이다라는뜻이아니겠느냐”라 고 대답하고,“우리가 이렇게 여행을할 수 있는 것도60평생그만큼노력을하였기때문에누릴수 있는자유가아니겠느냐”고 말하였더니고개를끄 덕인다. 7. 나이아가라폭포보고오기 워싱턴 D.C에. 서 나이아가라폭포까지는버스로 10시간을 가야한다. 버스안에서 차창밖으로 스 쳐 지나가는미국의시골풍경을바라보노라니, 가 끔 보이는집안의넓은정원은인공으로가꾸었다 기보다는 자연적으로 나무와 잔디가 생겨난 것처 럼 보였고, 집안에는여러대의자동차와말 몇 마 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승마용이아닌가싶다. 어느새‘나는언제저런전 원생활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하고 말았 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17세기 말 프랑스 선교사가 발견하여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세 계 제1의 폭포로 알았다가후에이과수폭포, 빅토 리아폭포가발견되어3대폭포로꼽힌다. 나이아가 라강의 거대한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다가 갑자기 50미터나 되는 벼랑으로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니 그 수량이가히짐작하기어렵다. 말발굽처럼생긴 폭포의폭은미국쪽이320미터, 캐나다쪽이900 미터나 된다. 비옷과 슬리퍼를 착용하고서 미국 쪽으로있는폭포하단부를안쪽으로난바위계단 을 따라걸어들어가보니폭포수가바위위에떨 어져내려부딪히면서물보라를일으키는데주변1 킬로미터까지물안개가퍼지고있었으며폭포수가 쏟아지는 소리 또한 매우 커서 옆 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할정도였다. 새삼대자연의위력을실감하 고 말았다. 과연그 크기나웅장함이카메라에담 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말로써 설명하기에도 벅찬 것이었다. 누구라도, 그많은시간과큰 돈을들여 서라도, 꼭가 보아야할 만한명소라고하기에충 분하였다. 캐나다땅으로버스를타고국경을넘어 가서도관람을하는데폭포수안 쪽에서비춰주는 야경또한볼거리이다. 난생처음헬기를타고공 중에서 약 20분간 구경을 하는데 — 타는비용은 120불이었다—헬기를타고공중을선회하는재미 는 타기전에혹시추락하기라도하면어쩌나하는 불안감을 잊어버리게 한다. 배를 타고 폭포 바로 밑에까지갔다나오는데타고간 유람선의이름이 ‘안개속의처녀(Maid of the mist)’라고한다. 그 연유는이 폭포가서양인들에게발견되기전 인디 언들이거주할때가뭄이들면처녀를재물로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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