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법무사 2월호

대한법무사협회7 3 ▶▶王室 내외는 초청된 이수현씨의 부모에게 위로의 말 을 건넸다. 이수현씨부모는이수현씨가숨진다 음해에일본왕궁에초청된바있어구면이었던 것이다. 국가를 통치하는사람을 국왕이라호칭하였는 바, 일본은2차세계대전시에는왕을사람이아 닌 신(神)으로호칭도격상시켰다. 이러한일본 왕이한국인이수현시6주기 추모행사장에참석 하였음은 파격적인 사건이며, 앞으로 한·일간 의친선에크게 도움이될 것으로생각된다. 3. 왕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침략 의 마수를뻗치던조선왕조말엽, 1895년8월에 고종 왕비인 명성황후가 일본의 침략정책에 반 기를 들어 걸림돌이 되자, 일본은 그들의 검객 폭도인 낭인배(浪人輩)를 동원하여 한밤중에 경 복궁에 쳐들어가서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그 유 해마저불태운끔찍한죄악을범하였다. 그런참변(을미사변)을일으킨지 1세기가넘도 록 일본국의 한국에 대한 공식 사과가 없었다. 한국인이마음이넓은아량이있지만, 비행자가 자기의비행을시인하지않는한, 비행을용서할 길은닫히고마는것이다. 한·일 양국의 우호와 친선을 다지는 여러행 사도좋지만, 우호·친선을도모하는방법의순 서를혼동하여서는아니된다. 상술한명성황후 시해사건을위시하여, 1923. 9. 1. 일본의관동 지방대지진발생시한국인2만명학살사건, 2차 세계대전시 한국여성 강제동원 사건 등 에 대한 공식사과가양국간의우호와 친선이이루어지는 첫계단임을일깨워주는바이다. 이와 같은 일본 식민통치하에서의 한국인의 피맺힌 수난 사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사과조차 받지못하고 있는데 일본계 미국인 가 와시마요코는적반하장격으로2차대전패전시 한국에서일본으로쫓겨갈 때 소녀의눈으로잠 시보고 상상한 토막사실을“요코 이야기”라는 짧은 글로썼고, 그 글에는 한국인이가해자요 일본인이 피해자로 묘사되었는 바, 어이없게도 이글은미국학교교재로쓰이기도하였다. 참으로 역사적 고증도 없이 한국인을 일본인 의가해자로만든이글이21세기에이르도록건 재하고 있었음은 한국인으로써 통분할 일이 아 닐수없다. 김 창 영 │ 법무사(서울중앙회)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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