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법무사 4월호
대한법무사협회 65 행운(幸運)과음덕(蔭德) 병대군복에소총을지급해주어해병대와같이 철수작전에참가케했다가자유대한으로올 수 있게해주었다. 이것은하늘이내린최상의행운 이다. 이때자위대대장직책이아니었다면해병 대중대장과친분을맺을수없었을것이고또해 병대가주둔하지않았다면나는구출될수 없었 을것이니참으로신기한인연인것이다. 넷째로내가대한민국에피난온 후 한국전쟁 이 한창일때 자원해서간 KLO유격부대에서복 무 중많은대원들이북파됐는데나는운좋게공 작원으로북한땅에투입되지않았기때문에살아 남았다. 이때북파된대원들은거의살아서돌아 올 수 없었다. 북파를각오하고자원했지만살아 남았으니행운이다. 다섯째, 휴전 후 KLO유격부대가해체되었다. 혈혈단신으로월남하여고향이없는나는1954년 3월서울에왔으나취직이안돼곤란을받을때 KLO부대에서같이복무하던최재열형이서울성 북동에 있는 744한미합동 교육대에 취직시켜주 었고, 나는그부대영내에서숙식을하면서야간 에근무하고낮에대학에다녔다. 그때그직장에 서대학등록금과책을사볼수있을정도의봉급 을받았기때문에대학에다닐수있던것이다. 이때의취직과대학졸업을한일은나의운명 을바꿔놓은행운의일이다. 여섯째, 나는 1961년 3월서울지방법원에서최 초로시행한일반직공개경쟁채용시험에응시하여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해 법원 공무원이됐다. 이일은피난민으로서는더없는행운이다. 내가주 변사람들의구설에기죽어대학에다니지않았다 면 이 시험응시자격이없었는데, 대학을다닐때 주변사람들이나에게돈을낭비하면서뽐내기위 해서다닌다, 우쭐대고싶어서다닌다는등, 참말 도 많았다. 나는그것을한 귀로흘려버리고어렸 을때, 꿈에어떤할아버지가벼루와먹을주고간 것을너는학문을하라는啓示로알고대학을다닌 것이 맞아 떨어져서법원공무원이될 수 있었고 그후법무사가된계기가된것이다. 나는지금은종교(고등종교)를믿고있으나위 의 여섯가지일이있을때는불교나기독교등 소위고등종교를믿지않고지낼때에그런행운 의 일들이있은것이다. 그러니깐불교의가피력 이나기독교의은총을받은것이아니다. 그렇다면그 幸運은조부모의산소를잘 모셨 기 때문에받은음덕(蔭德)이아니겠나? 그때는 그렇게도생각해봤다. 이렇게나는50을 넘어서부터나의지나온행 적과조상과의 관계를 연결시켜보기 시작했다. 사람은나이가들면누구나사후(死後)의일을생 각하게된다. 살다가언젠가죽는다는것을아는 것은인간뿐이다. 그래서살아서는가능한한 자 기중심주의에서벗어나타인에게도움을주는데 노력해보려고하고, 언젠가닥쳐올죽음에대하 여는그 공포심을 극복하고편안한마음으로죽 음과화합해보려고근래에와서나는종교(고등 종교)를믿기시작했다. 나는죽은후화장하는것이싫고, 어머니의품 과 같이 따스한 땅에 묻히고 싶다. 나는 산마다 소나무가무성한농촌에서흙을밟으면서성장하 고, 흙을파고씨를뿌리고, 흙이키워준곡식을 거두어 그것을 먹으며 살았다. 그래서살아서도 땅이좋고, 죽어서묻힐곳도소나무가우거진땅 이라고 생각하며살아왔다. 나는 소나무가 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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