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법무사 12월호
별 능력도 없으면서 다만 일상을 뛰어넘어 어 디론가 한 없이 날아가고 싶었던 젊은 시절은 어 느누구에게나한번쯤있었을것같다. 혼란기였던 1950년대는 더욱 그랬던 것이 아 닐까. 그러니까 단 한 번만이라도 태깔스럽게 변 신하여 발군의 역량으로 세월만 축내고 있는 권 태로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고말이다. 필자 역시 그렇게 가당치도 않은 객기를 부려 보고 싶었던 학창시절이 있었다. 1950년대는 우 리들문맹률이약 70%인데다가 6.25동란등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되어 우리 모두는 빈손으로 맨 땅에 폭삭 주저앉은 형국이었다. 그러니까 종전 4년여가 지나도록 부서지고 불타버린 그때 상처 난 속살을 그냥 그대로 드러내 놓은 채 방치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국 역시 혼미하여 몽매하 고 헐벗은 국민들의 신음을 달래줄 마땅한 처방 은 물론 그런 여유와 의지마저 찾아보기가 어려 웠었다. 그래서그시절을생각하면안타깝고민망하여 진정망각해버리고싶을뿐이다. 1957년초여름이였을것같다. 필자는 같은 과 동료 네 사람과 함께 돈암동의 유석조병옥박사님댁을찾았다. 조박사님은이 미 잘 알려진 대로 반공반탁을 제창하고 해방된 조국의 민주정권을 수립하는데 전력하셨던 분으 로서국회의원과내무부장관등을두루역임했으 며 1960년에는 민주당공천 대통령 후보로 당시 집권당이였던 자유당의 이승만 박사와 대결하던 중신병으로아깝게병사한분이기도하다. 특히 소련이 1945년 어수선한 해방정국을 틈 타한반도를자기들의위성국화하기위한방안으 로같은해 12월모스크바에서미, 소, 영 3국대 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한반도를 연합국이 신 탁통치할 것을 합의했던 사실에 격분하여 이를 용인할 수 없다고 전면에 나서서 반탁운동을 전 개했던 분으로서 그 당시 자신의 운명을 여기에 걸었었다고회고하고있었다. 우리가 조 박사님 댁 대문을 들어서면서 대뜸 부딪치게 되었던 험상궂은 불독 한 마리가 강렬 한 조 박사님의 인상과 겹쳐서 이상한 여운을 풍 겼다. 72 法務士 12월호 역사속명사들과 차한잔 隨│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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