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법무사 3월호

롯한 두 명의 숨겨둔 부인이 있었으며, 다이족 출신의 한 여인과는 아들까지 낳았다고 비난하면서 무자비한 경 찰력으로 광범위한 밀고자 조직망을 활용하여 재판 없는 구금과 인권탄압을 해온 독재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호치민을 가리켜 레닌과 간디가 절반씩 반죽된 사람이라고 하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그저 스쳐 지나가 는 외국의 한 여행객에 불과한 나로서는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 처지가 아니지만, 역사가 창시된 이래 수많은 영웅호걸의 행적 뒤에는 필연처럼 여인네들과의 실타래 같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음은 고금이 한결같을진대, 어찌 호치민이라 하여 예외가 있을까. 그저 지레짐작만으로 궁금증을 잠재울 수밖에 없다. 호치민 영묘, 지도자 혹은 독재자 호치민을 생각하다 호치민 영묘는 교통통제구역으로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 방문객들은 입구 바로 앞에서 다음과 같은 규 정을 준수해야 입장할 수 있었다. 첫째, 반바지 차림은 어림없다(안 된다는 뜻). 둘째, 배낭과 카메라 등을 소지 할 수 없다. 셋째, 고인에 대한 경건한 경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모자를 벗어야 한다. 넷째, 잡담을 금지하고 주 머니에 손을 넣어서는 안 된다. 이규정에따라소지품은카운터에맡기고몸수색을한후에야입장을할수있었다. 무더운날씨에수많은베트 남인과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가, 기다리기 지루할 즈음에야 비로소 서서히 움직이며 큰 구렁이가 바위 틈새로 천천히 들어가듯 영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영묘 안은 냉방도 잘 되어 있거니와 4~5m 간격으로 하얀 제 복을 깨끗하게 차려입은 군인들이 차렷 자세로 감시하고 있어 사뭇 엄숙한 냉기가 돈다. 호치민의 시신은 레닌의 시신처럼방부처리를하여유리관속에안치되어있는데, 금방이라도벌떡일어날듯한착각을느끼게생생하다. 영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호치민이 거주하였다는 조그마한 목조 건물과 공식 접견을 하면서 집무를 하 였다는 주석궁이 있다. 주석궁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호지민이 거주하였다는 초옥(草屋)같은 초라한 목 조 건물은 내부를 공개하는 터라 샅샅이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15평짜리 아파트만큼이나 작고 비좁은 그 곳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실제로 생활하였을까? 대통령이지만 이렇게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국민들 에게 보이기 위한 쇼는 아닐까? 사실이라면 월남전 당시 미국의 오차 없는 정보망이 이를 간과하고 폭격하지 아니한 까닭은 무엇일까? 의심 많은 머리는 혼란스러워진다. 영내를 벗어나 밖에서는 사진촬영이 가능하다고 하여 마침 옆에서 보초교대를 하고 있는 군인에게 기념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겠냐고 물으니 선선히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문득 강원도 전방에서 보초 근무를 하고 있는 아들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 아내와 둘이서 두어 장의 사진을 찍은 뒤 옆 매점에서 음료수 한 병을 사고 는 앞뒤를 살펴보니, 아뿔싸! 일행의 대열을 놓쳐 버렸다. 사람은 많고 많은데 정작 우리 일행은 보이지 않는 다. 정문 쪽으로 뛰어도 가보고 버스를 내리던 곳으로 가보아도 종적이 묘연하다. 말도 통하지 않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도 없는 곳에서 오직 하나 의지하던 일행을 잃어버린 당혹감은 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짐작이 어려우리라. 몸과 마음이 지쳐 갈 무렵, 돌아다니면서 진을 빼느니 차라리 앉아 서 당하자는 심사로 정문 앞 벤치에 앉아 있으니 낯익은 가이드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문묘로 이 동하다가 우리가 버스에 승차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되짚 어 왔다고 투덜댄다. 점검 없이 출발한 가 이드가 밉기도, 반갑기도 하였다. 54 法務士201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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