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법무사 4월호

걷는 것은 극히 위험한 것이다. 그럴 때에는 그 자리에 서서라도 2, 3분만 쉬면 심장의 박동이 서서히 진정된 다. 그리고 나서 다시 걷기 시작하는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 필자는 지리산을 세 번 갔다 왔다. 1999년도 10월30일에는 서초법무사 실무연구회(등기공조회원 모임)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화엄사 근방에서 1박하고 그 이튿날 성삼재에 올랐다. 그곳에서 노고단을 거쳐 반야봉 정상 까지 왕복 20㎞(?) 가량을 5시간(?)에 주파하였는데, 나보다 십여 년이 젊은 법무사(송태호, 고석구, 송정호, 황 정수)들에게 조금도 뒤처지지 않고 행동을 같이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는 반야봉 정상 정복이 목적이었으므로 어디를 쳐다볼 겨를도 없이 걸었는데, 이번에 종주를 하며 임걸 령 근방에서 왼쪽으로 길이 갈리며 저만치 서있는 반야봉을 다시 쳐다보니 꽤 높은 봉우리(1,732m)였구나 하 고 놀랬다. 그때는 큰 고생 없이 갔다 온 기억이어서 역시 젊었을 때가 좋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노고단~벽소령대피소, '바윗길 3시간' 山행辛행 4년 전 봄철 5월경에 재경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지리산을 찾았을 때는 남원을 경유, 달궁마 을을 지나 오르는 길을 택하였으므로 뱀사골, 피아골, 빗점골 등 절경을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였다. 그때도 성 삼재까지 버스로 가서 노고단까지 왕복으로 갔다 온 바 있었다. 흔히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100리 길이라고 들 한다. 필자가 노고단 대피소에 걸려있는 이정표를 보니 29.5㎞(?)이었던 것이다. 100리보다는 한참 모자란 다고 생각되었지만 종주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이정표에 적힌 거리는 직선거리인 것 같다는 사실이었고, 성삼재 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산청군 백무동으로 하산하여 백무동버스터미널까지는 100리도 훨씬 더 된다고 생각되 었다. 여하간 2010년 10월29일 노고단 대피소에 저녁 5시경에 도착하여 1박을 했다. 필자는 환경을 바꾸면 첫날은 잠을 제대로 못자는 버릇이 있어 예외 없이 그 날 밤도 아마 3시간 정도의 수면 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튿날(9월 30일) 100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아침 7시10경 산행을 시작했다.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첫 구간 노고단 대피소에서 벽소령 대피소까지 제일 고생이 심했던 산행이었다. 삼도봉을 지나 내려가는 거리는 나무 층계를 잘 해놓아서 위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화개재를 지나고 까치 봉을 오르는 데는 잠도 부족하였고 다리도 불편한 데다 날씨까지 무척 더워 정말로 기억에 오래 남을 고생을 많이 했다. "까치봉 3.4㎞"라고 되어 있어 힘들었지만 걷고 걸어서 거진 다 왔겠지 하였더니, 겨우 1㎞를 걸었 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심정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하였다. 깊은 산 1㎞는 보통 1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걸 이 번에 다시 한 번 실감하였다. 10년 전 반야봉에 올랐을 때 정상 표지석 옆에 "달궁까지 8㎞"라고 써 있던 것을 보고, 달궁은 전향한 빨치산 출신으로 60년대 민주당정권에서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이태의『남부군』이라는 체험소설에 자주 나온 지명이 어서 호기심이 있었으므로 몇 시간이면 갈 수 있겠구나 했던 생각이 얼마나 만용이었고, 산행경험이 없던 시절 의 생각인지를 깨닫게 되어 고소를 금치 못하였다. 사실 이번 산행에 집사람과 동행을 했으면 하였는데, 같이 안 오기를 참 잘했다고 몇 번이나 고맙고 감사한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2010년 9월30일 오후 3시경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여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벽소령 대피소를 향해 가는 데 이번 종주 중 제일 어려운 길이 이 코스였다. 3시간 정도를 맨 땅은 한 곳도 없고 바위만 있어 그 위를 밟고 걸어야 하는 고충은 필설로 다 할 수가 없다. 소설가 이병주는『지리산』이라는 실명소설에서 지리산을 '육산'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필자도 산행을 극구 수상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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