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법무사 4월호

말리는 집사람에게 "육산이니 괜찮다"고 설득했었는데 필자가 '이병주의 철학을 잘못 알았구나' 하고 지식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그 바위 길을 걸으며 오전에 임걸령 근방 오르막길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바위를 피해 넘어지면서 3~4m를 손도 쓸 새 없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갔는데, 다행히 빗물로 가운데가 움푹 패인 곳 이어서 다친 곳은 없이 그것으로 끝이 났다. '아직은 죽을 팔자가 아니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쉬고서 조심조심 한 덕에 이후에는 넘어지거나 다친 곳 없이 무사히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그때가 6시20분경이었으니 무 려 11시간을 계속 걸은 것이다. 지리산은 능선을 따라 산행을 하도록 되어 있어 중도에 물이 나오는 곳도 물이 고여 있는 곳도 없다. 산행을 하는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물이므로 항상 물을 충분히 준비하고 있어야 하며, 그 외 다른 부품들을 장만 하여야 하므로 짐의 부피와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여 가볍게 해야 한다. 하루 종일 산행을 하는 등산객은 평소 에 걷는 운동뿐만 아니라 어깨운동도 충분히 해 두어야 한다. 필자 경험으로는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쉬지 않고 걷는 운동만 일주일에 두 번씩, 두 달 정도만 하면 다리 힘은 충분할 것 같다. 11시간종주, '천왕봉정상' 감개무량 벽소령 대피소는 보수중인 탓도 있었지만 지리산 대피소 중 제일 형편없는 시설이다. 특히 물이 수도꼭지에 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정도여서 등산객 모두가 물이 적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국립공원 지리산 관리 사무소에서는 벽소령 대피소뿐만 아니라, 연하천 대피소에서 벽소령 대피소까지의 바위 길을 잘 다듬어 놓았 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였고 꼭 그렇게 해놓아야 한다고 강변하고 싶다. 벽소령 대피소에서는 워낙 피곤도 하였 으므로 그래도 잠을 조금 더 잔 것 같다. 그 이튿날(10월1일)은 아침 7시10분경 출발해 마지막 대피소인 장터목 대피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이 한 시간 10분 정도 걸어가니 반갑게도 물이 펑펑 나오는 선비 샘을 만났다. 그 샘은 옛날 옛적,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여 다른 사람의 질시와 천대를 받고 살았던 한 시골노인의 한을 풀어주고자 그 아들들이 이 높은 곳에 아버님의 묘를 써 모신 덕에 생긴 샘이었다. 정말 모든 등산객들이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그 샘물을 먹 고자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정말로 고맙고 감사했다. 물이 없어 나흘 동안 발 한 번 씻을 수 없고, 양말도 벗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샘물에서 발을 씻을 수는 없었고 세수만이라도 시원하게 할 수 있으니 좋았다. 12시30분경 세석평전에 도착했다. 지리산같이 높고 험한 산에 그렇게 넓고 평평한 곳이 있을 수 있을까? 항 상 궁금했던 세석평전! 정말로 넓은 분지 같은 곳, 이곳에 태릉선수촌 같은 대표선수들의 훈련장을 만들면 어 떠할까. 그러나 아름다운 산의 원형을 보존해야겠지. 봄에는 철쭉꽃이 정말 장관이란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여 장터목 대피소에 3시40분경 도착하다. 장터목은 산청군 시천면 사람과 함양군 마천 면 사람들이 만나 물물교환 하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원래는 장터목 대피소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그 이튿날 새벽에 천왕봉을 오르기로 하였는데, 이번 산행의 리더가 내일(10월2일)은 토요일이므로 밤과 새벽 에 도착하는 등산객들이 한꺼번에 천왕봉으로 몰려 더 힘들고 훨씬 고생이 심할 것 같으니 대 피소에 짐을 내려놓고(대피소에 도착하면 우선 잠자리를 배정받아야 했다. 우리 일행은 제일 연장자라고 하여 최우선으로 대우해 주었 다) 오늘 올라가자는 것이다. 52 法務士 2011년 4월호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