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K의 현장실화 ‘사건과 판결’ I [제1화] 이전등기무효소송 부부 모의사전 경매로 넘어가고 없었다. 유병길의 처는 가출한 상태였고, 그는 8명의 자녀와 함께 친지의 건물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비참한 생활에 허덕이던 그에게 소송전문 브로커가 붙은 것 같았다. 3년 동안 30여 회 이전등기를 하는 도중 단 한 번, 본인 확인만 한 법무사 사무소의 습관적인 방심, 그리고 유병길이 등기를 위임했던 유일한 단서인 확인서면이 모두 없어진 점을 이용하여 벌인 음모였다. 살펴본 바에 의하면 원래 유병길은 집안 살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았던 부동산 에서 일정한 수익이 나오는 것을 믿고 많은 자녀와 주유소, 식당 종업원 등 2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뒷바라 지는 모두 그의 처에게 일임하고 낚시나 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사태를 수습할 증거로 되지는 못 했다. 우선 시급한 것이 위증죄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만일 위증죄로 확정되면 유병길은 L의 사무실에 간 적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버린다. 따라서 그렇게 처분 된 모든 부동산은 본인의 확인절차 없이 진행되었으므로 원인무효가 될 것이다. 아무리 IMF사태로 부동산 거 래가 뜸하다지만 석길서에게 넘겼던 토지는 이미 분할과 함께 택지로 개발되어 평당 70만 원을 호가하고 있어 서 그것만계산해도210억 원이 되었다. 그책임은고스란히 L에게 부과될 것이니 가히 대재앙이었다. L은 이 결과를 감당할 방법이나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책임회피의 문제가 아니라 법무사의 자존심 과 사회정의의 문제였다. 원래 이 토지를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을 때 그 동기를 L이 대행했으므로 지난 사실을 입증할 수만 있으면 다른 절차의 하자는 치유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문서가 폐기되거나 사라져 버린 마당에 그 입증이 쉬울 것 같지가 않았다. K는 L의 처지가 너무 딱해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밤새 사건기록을 뒤적이며 고심하다 새벽녘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K는 꿈속에서 뭔가를 퍼뜩 떠올리며 눈을 번쩍 떴다. “아! 인감증명서 발급대장…!" 은행 근저당은 위임, 이전등기는 훔친 인감? 부부의 거짓소송 모의 옛날 고시공부 하던 시절, K는 간간이 동 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땐 모든 증명서를 일일이 대장 에 적어 발급사실에 대한 근거를 남겼다. 특히 인감증명서 발급대장에는 신청자의 도장과 지문이 나란히 찍 혀 있는 것을 보았다. K는 10만여 평이나 되는 토지를 분할하거나 매도를 하는 중 유병길의 인감증명서가 엄 청나게 많이 발급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미 항소장을 제출한 피고 석길서의 편에 L을 보조참 가 시키고 재판부에 관할 면사무소에서 보관 중인 10년간 인감증명서 발급대장의 인증등본 신청서를 냈다. 그런중에도1은형사법정에 피고인으로출석하여 재판을받았다. 법무사로서 참으로치욕적인 일이었지만 K는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라고 L을 다독였다. 어떻게 하든 실형이 떨어져 법무사를 휴업하는 일이나 거액의 돈을 변상하는 최악의 경우는 피해야 했다. 마침 항소법원에 도착한 인감증명서 발급대장을 복사해 와서 처음 부터 끝까지 꼼꼼히 정리해 나갔다. K의 예상이 맞았다. 10년간 유병길의 인감증명서 전체발급 건수는 151건이었는데 그 중 142건이 처가 대리 한 것으로 나왔다. 그리고 L의 사무실에서 등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마지막까지 3년 동안 발급된 인감증명서 는 모두 55건이었고 그중 51건이 그의 처가 대리한 것이었다. 인감도장을 갱신하던 2건을 포함하여 4건만 유 병길이 직접 받은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 인감갱신은 위 3년의 기간 내에 이뤄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유병길 의 주장대로라면 그의 처가 3개의 인감도장을 계속 홈쳤다는 말이었다. 60 『법무사』 2012년 5월호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