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법무사 6월호
4 『 』 2012년 6월호 권두언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 I 김 성 필 I 호원대학교 법경찰학부장·한국법정책학회 부회장 법의 목적은 정의의 실현? 누구를 위한 법인가 대학 신입생시절, 법을 처음 배우면서 접하게 된 법언(法諺)들 중에 ‘법의 무지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 이 있었다. 처음 이 법언을 들었을 때 두 가지 의문을 가졌었는데 대학에서 법을 가르치고 있는 오늘날에도 사회와 법을 바라보는 나의 끊임없는 화두로 자리하고 있다. 그 하나는 도대체 이 법언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국어 문법적 해석만이 가능했던 그 시절 처 음 든 생각은 ‘법을 모르면 용서받을 수 없다?’ ‘법을 모르는 것이 죄가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모든 사 람은 법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되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법을 알고 있을까?’ ‘나 는 왜 스무살이 되도록 법을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의문은 꼬리를 물었고 이 말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도서관을 헤 매고 다녔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 Īgnōrantia lēgis nēminem excūsat ’라는 라틴어 법언이었고, 더불어 상 당히 많은 법 원칙들이 이 라틴어 법언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법언의 정확한 의미는 후에 ‘위법성의 착오’에 관한 강의를 들으면서 겨우 알게 되었고 그로써 의문은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그 이후부터는 ‘왜 이 법언을 이렇게 번역했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하여 과연 우리나라의 법은 누구나 알 수 있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의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법 규정을 일상적인 문장이 아닌 전문적인 해석이 필요할 정도로 만들어 놓고 공포만 하면 모든 국민은 일단 아는 것으로 전제되는 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 모든 국민이 전문적인 법 공부를 하지 않는 마당에 오해(그야말로 誤解다!)의 여지가 너무나 많은, 그래서 제대로 알고 싶으면 머리 싸매고 방에 틀어 박혀 몇 년을 공부해야 하는, 그런 법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가? 국민의 대다수가 알지도 못하는 한자로 방(榜)을 해 놓고 안 지킨다고 벌을 주는 사회에서 제 뜻조차 제 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살아야 하는 백성의 서러움을 ‘어엿비 녀겼던’ 세종대왕의 깊은 뜻은 조선의 멸망 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란 말인가? ‘세상에 이런 법이 다 있나?’ 하는 부정적인 회의를 안고 법 공부를 출발한 나는 법의 목적이 ‘정의의 실 현’이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강의에 약간의 분노와 함께 상당한 혼란에 빠졌었다. 법의 목적이 정의의 실현이라면 아직도 법이 존재한다는 건 아직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반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은 말장난스러운 고민이었지만 그때는 어쩌면 법으로는 영원히 정의를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다면 내가 법을 공부해야 하는 의미가 사라진다는 두려움에 매우 심각해 있었다(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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