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K의 현장실화 ‘사건과 판결’ I 【제4화】 노총각 주거침입 성폭력 미수 사건 장 때문에 어느 정도 의식이 돌아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가 경찰과 법정에서 진술한 것을 보면 자신이 칼과 테이프를 들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들의 속옷을 얼굴에 덮어쓴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면 주위의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경찰과 끈을 이으려고 애를 쓴다. 피 고인이 구속되자 그의 누나도 아는 사람을 통해 담당 경찰관에게 선처를 부탁했던 모양이었다. 빨리 조사를 마 치고 직장에 복귀해야지. 그리 중한 사건도 아닌데 자꾸 부인만 하면 어떡해. 그러면서 담당형사는 그 지인에 게 자백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피고인은 취중에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칼과 투명테이프를 들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해버렸다. 10살 여자아이의 “아저씨, 누구세요?”, 과연 성폭력 상황에서 한 말? 그때까지 그가 진술했던 내용을 정리해보면, 자신도 모르게 남의 방에 들어갔는데 인기척을 느낀 여자가 눈 을 번쩍 뜨는 바람에 깜짝 놀라 동작을 멈췄다. 여자가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며 “우린 돈이 없어요. 파산상태 여서 아무 것도 없어요.”라고 말할 때까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서 있는데 옆방의 문이 열리며 그 집 딸 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피고인은 더 이상 서있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 같아서 방을 나가 줄행랑을 쳤다. 한참 가다보니 아이들의 옷 을 그냥 뒤집어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비로소 그것을 벗었다. 이것이 그가 허위자백(피고인의 진술로는)을 하기 전까지 진술했던 내용이었다. 한참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피고인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범행에 사용했던 아이들의 옷을 집 앞에서 주웠다며 피해자에게 건네주고 나온 것은 피고인의 진술이나 기록의 내용이 일치했 다. 그때, K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저씨 누구세요?” 그 집 큰 딸이 피고인에게 했다는 말이었다. 요즘 유치원에서도 남녀의 성기가 그려진 그림책을 펴놓고 성 교육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낯선 사람이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도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고 소 리치는 여자아이들도 꽤 많다고 한다. 그런데 열 살이면 초등학교 3~4학년이다. 그 또래의 여자아이들 가방에 는 화장용 백이 들어있고 인터넷이나 친구들을 통해 이미 성에 관해 어느 정도 눈이 뜰 나이다. 초경을 시작한 아이도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요즘 아이들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낯선 남자가 당시 자신의 엄마에게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과연 그 상황에서 잠에서 갓 깬 10살짜리 여자아이가 “아저씨, 누구세요?”라고 물을 수 있을까. 아마 십중팔구, 고함 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전혀 상황에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말은 경찰의 신문조서, 공소장, 판 결문에 그대로 인용되어 유죄의 보강증거로 사용되고 있었다. K는 문득 혹 이 말이 이 사건의 아킬레스건은 아닐까 생각하며 항소이유서에 들어갈 내용을 대략 간추려 보 았다. 먼저 증거부분을 정리해 나갔으나 상황마다 말을 바꾸는 피해자의 진술, 그리고 그 딸들이 했다는 두 마 디, 그게 전부였다. 앞에 언급한 대로 경찰이 부엌 냉장고 위에서 수거했다는 식칼과 투명테이프에는 피고인의 지문이 없었다. 그가 범행 때 꼈다는 면장갑은 찾지도 못했다. 독신 청년에게 연봉 3,500만 원은 그리 적은 돈이 아니다. 남의 집에 칼을 들고 들어가 금품을 강취할 정도 로 궁핍하지 않다는 말이다. K는 피고인의 지문 하나 묻지 않은 칼과 투명 테이프를 앞에 놓고 강도로 몬 것은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따지고 들었다. 50 『 』 2012년 8월호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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