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법무사 8월호

항소심 재판부는 마침내 강도 부분에 대하여 무죄를 인정하면서 피고인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도 역시 판결문에 “아저씨, 누구세요?”라는 큰 딸의 진술을 유죄인정의 근거로 명시하고 있었다. 자칫 성폭력의 혐의도 희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우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피해자의 큰 딸의 말, “아저씨 누구세요?”에 맞는 상황을 추론해서 적었다. 아이들이 방문을 열었을 때 피고인의 손에 식칼이나 투명테이프는 들려있지 않았을 것이다. 피고인은 구속되어 경찰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10여 년 근무했던 직장에서 이 일을 알면 어떻게 할까, 그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자백해. 별거 아냐. 사건 을 종결하고 빨리 직장에 복귀해야지. 이런 형사의 회유로 대충 자백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항소이유서 - 당시 상황 추측하면 피고인은 ‘주거침입죄’ 정도 그렇다면 새벽에 남편을 배웅한 후 깜빡 새벽잠이 들었던 피해자는 피고인이 방에 들어가자 인기척을 느껴 눈을 떴고, 순간적으로 도둑이 들었다고 판단한 피해자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아저씨, 우린 돈이 없어 요.”라고 했을 것이다. 잠을 자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 여자가 눈을 뜨고 떠들자 피고인 역시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서있는 사이, 엄마의 겁에 질린 목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문을 열고 엄마 방으로 건너왔다. 웬 낯선 남자 가 서있는 것을 본 큰 아이는(10월 중순의 일출시간은 6시 40분 전후이므로 방안은 이때쯤 주위의 물체를 분간 할 정도로 밝았을 것이다.) 놀란 기색으로 “아저씨, 누구세요?”라고 했던 것 같다. 이때 아이들 옷을 머리에 덮 어쓰고 입을 가린 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서있는 피고인에게 9살짜리 둘째 딸이 “아저씨, 왜 쇼를 하세 요.”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여자가 갑자기 눈을 뜨는 바람에 당황했던 피고인은 아이들이 나타나자 더 욱 안절부절 못하고 “그냥 가겠다.”라며 도망을 치지 않았을까. 당황한 나머지 아이들의 옷가지도 그냥 뒤집어 쓴 채 도망했던 피고인이 식칼과 투명테이프를 냉장고 위에 두고 나왔다는 것은 사리에도 전혀 맞지 않았다. 그리고 1심판결이 선고되기 직전에 피고인의 누나와 피해자 간에 1,500만 원으로 합의를 본 사실, 이미 피고 인은 이 사건 때문에 연봉 3,500만 원짜리 직장을 잃게 됐다는 사실도 강조를 했다. 대충 이렇게 항소이유서를 완성하고 나니 이것을 재판부에 낼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피고인이 항소를 했고, 항소이 유서는 항소인이나 변호인이 제출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법무사 K는 하는 수 없이 피고인의 누나를 교도소 로 보냈다. 이 내용을 피고인의 자필로 다시 쓰는 수밖에 없었다. 한 달 후, 항소심 재판부는 마침내 강도 부분에 대하여 무죄를 인정하면서 피고인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죄명도 ‘특수강도강간’에서 ‘주거침입 강간’으로 바뀌었다. 재물강취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 는 취지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도 역시 판결문에 “아저씨, 누구세요?”라는 큰 딸의 진술을 유죄인정의 근 거로 명시하고 있었다. 자칫 성폭력의 혐의도 희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우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K가 추측한 대로였다면 피고인은 주거침입죄 정도의 혐의밖에 없는 것이 된다. 물론 정황으로 봐서 피고인이 성 폭행을 목적으로 그 집에 들어간 것은 맞는 것 같았다. 비록 피고인 입장에서 항소이유서를 작성했지만, 사실 사건 을 직접 심리하고 신문한 수사기관과 재판부의 판단이 가장 정확할 것이라는 인식은 K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선입견 때문에 상황판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과 여부에 불구하고 기분 좋은 사건은 아니었으므로 K는 항소이유서 부본과 판결문을 파일 깊숙이 넣어 두었다. ▒ 법무사 K의 현장실화 ‘사건과 판결’ 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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