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법무사 8월호

59 수상 어 있을 잠재적 가능성까지 송두리째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그래서 더욱 우리의 사유를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문화재 이기도 하다. 역사는사유와상상력의원천, 유물찾아야 역사는 이렇듯 전통과 철학, 사상과 종교 등에서 유래한다고 했다. 그러기에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을 것이다. 옛 도읍지를 찾아서 어지러 운 마음을 내려놓고 신령한 서기(瑞氣)가 서린 역사 의 그늘에 들어서 거대한 역사의 얼굴과 마주하고 상상력의 질감까지도 곱게 다듬어 보려던 생각은 비록 필자의 바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처럼 오감을 열고 역사의 향기를 누리고자 부 소산성을 두리번거려 봤으나 장려하고 감동적인 유 적과 쉽게 마주치지 못한 까닭은 역사의 밖에서만 너무 겉돌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농사짓는 농부와 그 논두렁을 거닐던 자의 시각과 감각의 차이가 다 를 수밖에 없듯이 역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차이 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사실 백제는 부여의 능산리 고분사면 석벽과 천 정에 화려한 사신도 및 연화문 등은 당시 미술의 우 수성은 물론 익산의 미륵사 석탑과 부여의 5층석탑 등은 그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 신라 황룡사 9층탑 건조 시에도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를 비롯한 기술 자들이 동원되었던 사실이 있으며, 석등과 와등 등 에서도 고구려는 물론 일본의 아스카 시대의 문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백제문화의 그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에 아 쉬움은 더했다. 좌절을 딛고서라도 끈질긴 의지와 생명력으로 살 아남아 있어야 할 그 유적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 리고 말았단 말인가. 모처럼 장려한 유물과 내밀한 감동을 체험해 보려던 허기진 충동은 그래서 더욱 애틋한 미련으로 남았다. 우리 후손들은 부디 역사 로 부활할 수 있는 유물을 찾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 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부소산 길을 걷고 있던 필자는 문득 예사 롭지 않은 생각에 매달렸다. 세상에 모든 길은 집 으로 향하고 있다는데 부소산 산길은 유독 낙화암 으로 향하고만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신 발이 수없이 끌고 다녔을 길과 그 길 위에 새겨졌을 발자국들 이들 모두가 부산하게 낙화암으로 나 있 었기에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백제 말기에 창건되었다는 고 란사는 고려 현종 때 낙화암에서 죽은 삼천궁녀를 기리기 위해서 건축되었다는 유래가 더 설득력 있 게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우선 지형을 보아서도 더 욱 그랬다. 귀가하던 길에 차창에 기대어 수없이 바 뀌고 사라지고 있는 바깥풍경을 바라보면서 소중했 던 우리 유적들 역시 저처럼 우리 시야에서 멀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 “좌절을딛고서라도끈질긴의지와생명력으로살아남아있어야할그유적들은 도대체어디로가버리고말았단말인가. 모처럼장려한유물과내밀한감동을체험해 보려던허기진충동은그래서더욱애틋한미련으로남았다. 우리후손들은부디역사로 부활할 수 있는유물을찾는작업에심혈을기울어야겠다는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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