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 二\ 와 기념공원을 관람하였다. 큰 바위(大岩) 대암 이태준 열사는 세브란스 의 대(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몽골로 가 동의의 국(同義醫局)병원을 개원. 현대의학에 무지했던 몽 골인들에게 의술을 베풀며 박애정신을 발휘하는 한 편, 독립운동에도 깊이 개입했다. 당시 몽골인들에 게 유행하던 성병을 퇴치하는 등 몽골의 정신적 지 주로 추앙받았던 이 열사는 ‘비밀결사대(애국지사)’ 들과 긴밀한 항일운동을 하다 1921년 러시아의 악 명 높은 운게룬에 교살, 38세의 아까운 나이로 장 렬히 산화하였다. 한·몽 양국은 이 열사를 기려 기 념관과 공원을 설립하였다. 이태준 기념공원 관람 후에는 몽골 고비사막에 서 발굴된 가장 완벽한 공룡화석 동 여러 동물의 박 제를 관람했으며, 시간관계로 역사박물관을 관람치 못한 아쉬움을 남기면서 이곳에 전출하여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한국의 ‘송도병원’을 방문하였다. 송 도병원은 7년 전 몽골에 와 송도병원 그 자체의 이 름으로 병원을 개설하였으며. 현재는 강영훈 행정 원장이 총책임을 맡아 운영되고 있는데, 울란바토 르중심부에 있다. 병원 방문 후에는 흐미(오직 사람의 목에서 나오 는 소리로 연주), 마두금 연주, 참댄스 동 몽골의 전 통공연을 관람했고. 이를 끝으로 비공식 행사를 모 두마쳤다. 6월 30일(토) 비(雨) 귀국, 한·몽교류축복하는‘단비’ 몽골의 전통가옥 께르’ 앞에서 기념촬영(필자는 왼쪽에서 두 번째). 차 있었는데, 귀국하는 날 한국에서도 단비가 내려 가뭄에 논배미가 거북등처럼 갈라져 울상이 된 농 민들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덕분에 ‘‘천사가 비를 몰고 왔다”는 덕담을 나누며 풍요로운 인심을 경험 할수있었다. 3박 4일의 짧은 여행에서 몇 가지 느낀 바를 정 리한다면, 첫째로 몽골여성들의 위풍당당仮戈風堂 堂)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둘째로 세계적으로 이 민의 증가에 따라 결혼을 통한 이민여성이 증가하 고 있는데, 늘어나는 한국남(男)과 몽골여 (女)의 국 제결혼을 실감하였다. 1990년 몽골과 외교관계를 맺은 뒤로 최근 10년간 통계상 몽골여성들이 세계 80여 국의 6,000여 명과 국제결혼을 했는데, 그 중 4,000명 가량은 한국인이 었다고 한다. 65%인 셈이 다. 얼마 전에는 귀화한 몽골여성이 경기도 의회에 입성하기도했다. 작아지는 지구촌과 다문화 가정을 생각하면서 양 국 간의 협 력과 더불어 이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이주민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이해, 포용하는 마지막 날 공항으로 이동해 아침 일찍 인천국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끝으로 공항에 도착했다. 이로써 무사히 3박 4일의 행사가 오래 전부터 이 행사를 기획하여 한 치의 오차(誤 끝이 났다. 이번 한·몽 문학교류 세계시 낭송회는, 差)도 없이 진행한 세계시문학연구회 김정웅 회장 몽골에 입국하는 첫날에도 홉족한 비(雨)가 내려 몽 님과 헌신적으로 노력해 주선 집행부 여러분들에게 골사람들이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워하며 기대에 큰 감사를 드리면서 이 글을 맺는다 . • 수상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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