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법무사 12월호
4 『 』 2012년 12월호 권두언 코닥이 될 것인가, 후지필름이 될 것인가? I 오 병 철 I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디지털에 저항한 코닥은 파산, 편승한 후지필름은 2조 원 대 영업이익 살다 보면 나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진행되고 있는 내 삶을 어이없이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순간을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 교수생활 만 13년 6개월 만에 맞은 황금 같은 연구년을 미국에서 보내기 위해 가족 과 함께 짐을 꾸릴 때에는, 나 홀로 귀국비행기에 오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른바 ‘기러기’ 생활을 하면서도 혼자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크게 갖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손 안의 스마트폰에 깔린 ‘카카오톡’ 때문이다. 언제든지 생각만 나면 짧은 글로 하는 대화라도 무한정 마음껏 할 수 있고, 사진이나 음성, 심지어 동영상까지도 쉽게 주고받을 수 있으니 내 곁에 항상 식구들이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더욱 좋은 것은 공짜다. 물론 휴대전화 정액제 요금에 데이터 사용료가 일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그러고 보면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산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독일에 연구차 객원 학자로 체류할 때도 혼자였다. 그 당시의 심정적 거리감이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1분에 천원이 훌 쩍 넘는 돈을 주고 감히 국제전화로 대화한다는 것은 정말로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사 치이고, 글로 안부를 주고받는 편지도 비싸기도 하거니와 적어도 일주일 이상을 기다려야 할 형편이라 한 국에 있는 가족들과의 교류는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불과 15년이 지난 오늘날 비용부담 없이 마음껏 음성 통신뿐만 아니라 동영상까지도 주고받을 수 있는 ‘카카오톡’을 통해 나는 인터넷 쓰나미가 만드는 ‘상전벽 해’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IT 분야의 가장 뜨거운 논란 중 하나인 ‘인터넷 망중립성 논쟁’은 바로 이동통신사와 이동통신을 실질적 으로 대체하는 카카오톡과의 살벌한 전쟁터의 이름이다. 마치 쓰나미와도 같이 거세게 밀어닥치는 인터넷 의 ‘벽해’에 가라앉느냐 아니면 기어이 살아남느냐의 기로에 선 기간통신 사업자의 운명은 참으로 불안 불 안하다. 이미 우리는 디지털 쓰나미에 휩쓸려 가라앉아 운명하기 직전의 코닥(Kodak)을 보는 동시에, ‘벽해’에서 유유히 순항하고 있는 후지필름(Fujifilm)도 보고 있다. 왜 같은 필름업체 중에서 오히려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한 코닥은 가라앉은 반면, 상대적으로 열등했던 후지필름은 살아남게 되었는지는 너무도 유명한 일화 이다. 131년 역사를 자랑하는 필름업계의 황제였던 코닥은 황제의 검과도 같은 필름을 끝까지 부여잡고 디지 털 쓰나미에 정면으로 저항한 결과, 올 1월 파산보호 신청을 하는 노예와 같은 신분으로 전락하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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