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3월호

65 발레리를 읽었고, “몇 개의 도회지를 방랑하며 청춘 을 탕진한 작가가 엎질러진 것이 가난뿐인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듯이”(「흔해 빠진 독서」) 대학을 졸업하고 땅거미 진 빌딩숲을 헤매다가 군에 입대하였다. 절망·체념에 대한 꼿꼿한 응시에서 ‘희망의 싹’이 현실은 대체로 희망에 가득찬 밝은 세계와 절망으 로 좌초된 어두운 세계가 양존하고 있다. 현실세계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아프락사스의 날개가 어느 쪽으로 기울든 희망과 절망은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 이다. 대부분의 시인은 즐겨 희망의 세계, 밝음의 세 계, 유채색의 꽃동산을 노래한다. 그러나 기형도의 시는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보이 지 않는, 끝없는 절망의 터널만 계속되고 있는 검고 어두운 무채색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 습관적이건 의도적이건 간에 ‘검은 잎’으로 시작하여 사물을 검거나 무채색으로 묘사한다는 사실을 발견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현실을 칠흑같이 어두운 절망적인 세계로 바라보 는 그의 시각이 개별적으로 독자에게 보편적 공감대 를 형성시킬 수 있는 것은 아프락사스와 같은 현실의 양면성과 기형도 시인의 정직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검은 구름과 검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곳을 편법을 써서 빠져나오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쉽 사리 삶을 포기하지 않고 그곳에 웅크리고 앉아서 절 망과 체념을 꼿꼿하게 응시하는 끈끈한 태도야말로 암울한 현실세계에 대한 적나라한 대응법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가 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이 는, 절망이 삶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어둡고 축축한 무채색의 세계만을 노래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틔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 어디 있느냐 식목제의 캄캄한 밤이여, 바람 속에 견고한 불의 입상이 되어 싱싱한 줄기로 솟아오를 거냐, 어느 날이냐 곧 이어 소스라치며 내 유년의 떨리던, 짧은 넋이여 - 「식목제」 일부 그가 삶에 대한 통찰력이 깊어지고 현실에 대한 대 응방법에 변화가 올 때까지 좀 더 살았더라면 분명 끝없는 절망의 터널에서 출구를 발견하고 희망을 노 래하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삶의 궤적이 검고 어두운 무채색의 세계에서 홀연히 끊어져 버린 것이 못내 아 쉽기만 하다. “기형도의 시는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끝없는 절망의 터널만 계속되고 있는 검고 어두운 무채색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현실을 칠흑같이 어두운 절망적인 세계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개별적으로 독자에게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는 것은 아프락사스와 같은 현실의 양면성과 기형도 시인의 정직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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