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3월호
67 5) “微之與白樂天最密, 雖骨肉未至, 愛慕之情, 可欺金石, 千里神交, 若合符契, 唱和之多, 無踰二公者.” (前揭書 p. 675-677) (‘千里神交’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텔레파시<telepathy>라 할 수 있음.) 6) 김원중 역해 『당시(唐詩)』 p. 505 四月十日夜, 樂天白. 微之,微之. 不見足下面, 已三年矣. 不得足下書, 欲二年矣. 人生幾何, 離闊如此. 况 以膠漆之心, 置於胡越之身. 進不得相合, 退不能相忘. 牽攣乖隔, 各欲白首. 微之,微之. 如何如何. 天實爲之, 謂之奈何. (이하 생략) 4월 10일 밤에 낙천은 아뢴다. 미지여, 미지여. 그대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도 이미 3년이 지났네. 그대의 편지를 받지 못한지도 2년이 되려고 하네. 길지 않는 인생살이에서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하는가? 하물며아교와옻칠같이친한우리가胡(북쪽)와 越(남쪽)에 서로 떨어져 있으니 말일세. 나아가도 서로만날수없고물러나도서로잊지못하네.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떨어져 있어, 각자 늙어 서머리털이희어지려고하네. 미지여, 미지여. 어찌하리, 어찌하리. 실로하늘 이하는것이라면이것을어찌하랴? 원진( 元稹 )의 예조기예( 譽早氣銳 ) 원진( 元稹 , 779~831)은 자(字)가 미지(微之)이며 15세에 명경과(明經科)에 급제, 24세에 비서성(秘書 省) 교서랑(校書郞)이 되어 백거이와 같이 근무하면 서 교분을 쌓게 되었고, 28세(806년)에는 친시(親試) 에 응하기 위하여 두 사람이 교서랑 직을 그만두고 화양관(華陽觀)에서 공부를 한 뒤에 재식겸무명어체 용과(才識兼茂明於體用科)에 나란히 합격하였는데, 원진은 일등으로 급제하여 좌습유(左拾遺)가 되었다. 32세에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을 때 태감(太 監) 구사량(仇士良)과 다투어 강릉부사조참군(江陵府 士曹參軍)으로 좌천되기도 했으나, 44세에는 재상(宰 相)인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에 오르 게 되었다. 그가 처음 재상이 되자 성격이 고약하고 행동거지가 부박(浮薄)하여 조야(朝野)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며 결국 얼마 후 파직당하고 말았다. 원진은 백낙천과 가장 친밀하였다. 비록 골육의 친 척은 아니었지만 서로 애모하는 정은 가히 금석을 속 일 정도였다. 천리 밖에 떨어져 있어도 신기한 교감 으로 마치 부계(符契)가 일치하는 것 같았으며, 둘이 창화(唱和)한 많은 글은 이 두 사람을 넘어서는 자가 없었다. 5) 친구 백낙천이 강주사마로 좌천되었다는 말을 듣고 원진이 지은 시(詩)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6) 문낙천수강주사마 (聞樂天授江州司馬) 잔등무염영당당 (殘燈無焰影幢幢) , 차석문군적구강 (此夕聞君謫九江) . 수사병중경좌기 (垂死病中驚坐起) , 암풍취우입한창 (暗風吹雨入寒窗) . 꺼져가는 등불은 불꽃도 없이 그림자만 아롱거 리는데, 이 저녁 그대가 구강으로 좌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음이드리운병중에놀라일어나앉으니, 어두운 바람은 비를 몰고 와서 차가운 창문으 로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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