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3월호
68 『 』 2013년 2월호 수상 비소리를듣는다 배 영 원 ■ 법무사(서울북부회) 비가오는오남리는질퍽하다. 비가 오는 이른 아침의 오남리는 질퍽하다. 비가 오면 어찌 오남리만 질퍽하겠는가만은 내가 사는 남 양주시 오남읍 오남리의 일부 구역은 주위에 산이 빙 둘러 있어 그 산의 계곡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이 좁 은 계천(溪川)으로 흘러들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계 천의 양안(兩岸)을 넘어 아파트 주변의 도로를 침범 하고 있기 때문에 비오는 날 이른 아침의 오남리는 질퍽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른 아침인 4시 25분. 참으로 오랜만에 비 가 내리고 있는데 빗소리에 잠이 깨어 베란다로 나가 밖을 본다. 창대처럼 쏟아지는 비는 아파트 단지를 빗속으로 몰아넣고, 단지에 쏟아지는 비는 하얗게 포 말을 일으키면서 맴돌다 서로 밀리더니 하수구로 소 멸하고 만다. 눈을 들어 저 건너편 복두산을 바라보 니 뿌연 빗속에 갇힌 산은 바야흐로 한 폭의 동양화 를 연출하고 있다. 흐르는 구름이 묘한 변화를 더 하 니 그 운치는 겸제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오남리로 옮겨 놓은 듯하다. 역시 저 건너 오남 저수지의 긴 제방도 사정없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 그 기나긴 제방의 스카이라인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교회의 첨탑은 어떤 가. 이 폭우 속에서도 첨탑의 붉은 등은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고 있음인가 꺼질 것 같지 않는 영원한 자 세로 빛나고 있다. 이 폭우 속에서도 신자들은 교회 에 나가 새벽기도를 하고 있을 것인데 그들의 기도는 과연 무엇을 바람인가? 나는 예전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비 맞기 를 유난히 좋아했다. 비가 오면 시도 때도 없이 우산 도 받지 않고 밖으로 나가 비를 맞았는데, 검정 군복 에 검정 군화를 신고 긴 머리칼을 비에 흠뻑 적시면 서 마치 세상의 모든 고민을 양쪽 어깨에 짊어진 것 처럼 고개를 푸욱 숙이고 터벅터벅 걷곤 했다. 사실 머릿속은 텅 비어 있어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남들 이 볼 때에는 ‘저 놈 또 미친 지랄 발광기가 발동했구 나’ 하고 비웃기 좋았나 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비오는 날 비 맞기의 진솔한 재미를 모르는 헛똑똑이일 것이다. 아야, 비맞는것이그리재미있냐? 사실은 비 맞고 돌아다니는 나를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어머니께서 해주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 야야! 너는 비 맞는 것이 그리 재미있냐?”하고 물으셨다. 그때 나는 ‘아. 우리 어머님은 과연 멋쟁이 시구나’ 하고 감탄을 하였다. 남들은 비 맞는 나를 보 고 미친놈이라고 비웃었는지 몰라도 우리 어머님은 ‘삶의 여유를 아는 멋쟁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님. 저랑 같이 비 한 번 맞아 볼까요?” 하고 은 근히 유인하기도 했다. 어머니와 나의 ‘비 맞기 동행’은 끝내 성사되지 않
Made with FlippingBook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