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3월호

나는예전고향에서고등학교를다닐적에비맞기를유난히좋아하였다. 비가오면검정군복에 검정 군화를 신고 긴 머리칼을 비에 흠뻑 적시면서 고개를 푸욱 숙이고 터벅터벅 걷곤 했다. 사실 머릿속은 텅 비어 있어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남들이 볼 때에는 ‘ 저 놈 또 미친 지랄 발광기가 발동했구나 ’ 하고비웃기좋았나보다. 69 았지만, 어머니는 항상 비오는 날 비를 맞고 들어오는 나를 맞이하면서 “아, 야야! 그러다가 감기 들라. 목욕 물 받아 놓았으니 빨리 더운 물에 몸 씻어라” 하시며 자식 놈 감기 들까봐 알뜰한 배려를 잊지 않으셨다. 과연 어머님의 은혜는 바다와 같이 넓고 깊을진저! 세월은 흘러 내 나이 72세의 늙은이가 되어 있는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까닭없이 설렌다. 옛 날처럼 밖으로 뛰어나가지는 못할지라도 우두커니 서서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르 니 과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틀림이 없 는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를 맞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나이 들어 비 맞고 돌 아다니다 감기라도 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감히 엄 두도 내지 못하고, 비가 쏟아지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옛날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세파 에 절은 노인네가 다 된 모양이다. 비가 오는 날의 오남리 저수지에 가본다고 마음만 먹고 아직까지 가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왜이리 게을 러졌나 걱정하면서도 못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을 억지 로 만들어 가지 못하는 나를 합리화하고 있으니 그 또한 참으로 씁쓰레하고 한심한 노릇이다. 하지만 지 금도 오남리 저수지에 가보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 고 있다. 비가 오는 날 오남리 저수지에서 저수지의 수면 위 로 창대같이 쏟아지는 비를 보고 싶다. 수면 위로 쏟 아지는 비는 아마도 뿌연 포말을 일으키면서 솟구치 는 물방울들과 함께 장관을 연출할 것인데, 그 폭우 속에서 물오리들은 과연 어떻게 하고 있을까. 비가 오는 날에 비를 맞이하는 내가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으나, 저 내밀한 나의 가슴 깊 은 곳에서는 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넉넉해지 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지금이야 감기 들까봐 걱정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 저 깊은 곳 에서 조용히 솟아오르는 상쾌한 기분과 넉넉한 마음 가짐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을 보상이라도 하려 는 듯 더 한층 나를 설레게 해 이를 억누르려 애를 써 야 할 정도다. 지금은 어머님이 계시지 않으니 건강을 챙겨줄 사 람도 없고, 그래서 스스로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노 인 같은 생각에 꼼짝없이 갇혀 있지만 비오는 날이면 저 옛날 청소년 시절과 같이 설레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비는왜마음을설레게하는가? 비는 왜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가? 자연현상으로 서의 비는 그 무게로 인해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 지만, 떨어지는 비는 땅으로 쏟아지기 마련인데 비가 내릴 때 그 속도와 양에 따라, 또 비가 내리는 장소에 따라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참으로 다양하다. 비 오는 날 가만히 귀기울여 비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그것 참 보통 재미가 아님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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