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3월호

수상 70 『 』 2013년 3월호 것이다. 만약에 비가 바람에 실려 내린다면 그 소리는 더 한층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바람에 실려 온 비가 땅 에 내릴 때 들리는 소리와 지붕 위에 내릴 때 소리가 다르고, 지붕도 지붕 나름이라 기와지붕과 양철지붕 에 내리는 소리가 다르며, 초가집 지붕 위에 내리는 소리는 또 다른 소리다. 한여름철의 대낮에 양철지붕에 내리는 빗소리는 요란하지만 경쾌하다. 약간 시끄러운 느낌은 있으나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그 경쾌함으로 인해 오히려 더위를 잊게 하는 효과가 있어 여름 한낮의 망중한(忙中閑)을 선사한다. 그래서 나는 여름 한낮 의 양철지붕 위에 내리는 빗소리를 아주 좋아한다. 한편, 초가지붕 위에 비가 내릴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귀기울여 조용히 들어 보면 양철지붕에 내릴 때처럼 요란하고 경쾌한 소리 는 아니지만 “스스스, 츠츠츠, 치치치” 하는 소리가 마치 대나무 잎에 비가 내릴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 게 들리는데, 그 느낌이 소슬(簫瑟)하고 아련하다. 그래서 그 소리를 계속 듣고 있노라면 마음은 깊은 내면으로 침잠(沈潛)해 아득히 먼 옛날이 생각나며 우울한 기분으로 빠져들게 된다. 역설(逆說)일 것이 나 나는 여름날 양철지붕 위에 내리는 빗소리도 좋아 하지만, 이렇게 가을의 어느 날 무겁게 초가지붕 위 에 내리는 빗소리도 참 좋아한다. 그러면 서울의 빗소리는 어떨까. 모든 빗소리는 빗 소리일 뿐, 어찌 서울의 빗소리가 다르고 시골의 빗 소리가 다를까만은, 그래도 빗소리를 듣는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를 것이며, 그 느낌 또한 빗소리를 듣는 자의 주관적 심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니, 나의 경우 서울 비는 삭막하다는 느낌이다. ‘삭막(索漠)’하다는 것은 사전적으로는 “외롭고 쓸 쓸하고 고요함. 잊어버려 생각이 아득함”이라는 뜻이 다. 왜 서울의 비는 삭막할까. 아마도 서울이 고향인 서울내기들은 서울비가 삭막하다고 말하는 것을 이 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시골이 고향이라 시골 논밭에 내리는 비와 동네 집 마당에 내리는 비, 그리고 산과 들에 내리는 비를 맞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서울의 콘크리트 벽에 내리는 빗소리가 왜 삭막한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서울 비도 도봉산에서 내리는 비, 성북동의 골짜기에서 내리는 비, 명동 한복판에 내리는 비에 따라 소리들이 제각각일 것이니 서울 빗소리를 싸잡 아 삭막하다고 말하는 것은 반드시 타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야 장님 코끼리 만 지기처럼 제각각 생각이 다를 것이라는 뜻에서 나는 “서울 비는 삭막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빌딩사이로내리꽂히는비의숲 서울 비는 나로 하여금 쫓기게 한다. 비오는 날 서 울의 도심 풍경은 대체적으로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로 메워지고 있는데, 느닷없는 비에 노출된 서울시 민들은 비를 피할 장소를 찾아 뛰어다니기에 바쁘며, 우산장수를 찾아 두리번거리기에 바쁘다. 논에 밭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손으로 비를 받고 있는 시골 동네의 장면을 서울에서는 볼 수가 없다.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시간을 단위로 하여 측정되는 서울살이에서 손을 내밀어 비를 반기는 사람들은 찾 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누군가 손을 내밀어 비를 받 아내고 있다면 ‘저 사람 어디가 이상해진 것 아니냐’ 면서 웃고 지나치기 십상일 것이다. 나도 서울살이 수십 년에 손 내밀어 비를 반기는 낭만의 멋을 부릴 수 없는, 쫓기는 사람이 다 되었다. 그러나 그 서울 비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비가 있 다. 도심의 한복판에 있는 고층빌딩 사이로 내리는 비다. 고층빌딩의 최고층에서 바라볼 때 하늘에서 쏟 아지는 장대같은 비가 땅으로 내리꽂히는 장면과 땅 에서 바라볼 때 저 높은 하늘에서 빌딩 사이로 내리 꽂히는 비는 비의 숲(雨林)을 이루는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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