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4월호
그의 옛 신하로서 주인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 니 이 사람이야말로 천하의 현인(賢人)이다.” 그리고 는 마침내 풀어주었다. 얼마 뒤에 예양은 또다시 복수를 하기 위해 몸에 옻칠을 하여 피부병 환자로 꾸미고 불붙은 숯을 삼켜 목소리까지 바꿔서 자신의 모습을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게 하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였다. 그의 아내조차 예양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나, 친구 에게 발각되었다. “자네는 예양이 아닌가?” 예양이 대답하였다. “그렇다.” 그 친구는 울면서 말했다. “자네만한 재능으로 예물을 바치고 양자의 신하가 되어 섬긴다면 양자는 틀림없이 자네를 가까이하고 아낄 걸세. 그런 뒤에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오 히려 손쉽지 않는가? 어찌하여 몸을 망치고 모습을 추하게 해가면서 원수를 갚으려고 하다니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자 예양은 이렇게 말하였다. “예물을 바치고 신하가 되어서 그 주인을 죽이려고 한다면 두 마음을 품는 것이 된다. 지금 내가 하고 있 는 일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품고 주인을 섬기는 자들로 하여금 부끄러 움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일세.” 그 뒤 양자가 외출할 때 예양은 연도의 다리 아래 숨어 있었다. 양자가 다리목에 이르자 말이 놀라서 껑충 뛰었다. “이는 틀림없이 예양이리라.”하고 다리 밑을 수색하였더니 과연 예양이 있었다. 양자는 예양을 꾸짖었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기지 않았는 가? 지백이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지만, 그대는 그들 을 위해 원수를 갚기는커녕 도리어 예물을 바쳐 지백 을 섬겼다. 그런데 그 지백이 죽고 나서는 어찌하여 지백을 위해서만 이토록 끈덕지게 복수를 하려고 하 는가?” 지백이국사우아( 智伯以國士遇我 ), 지백은 나를 국사로 대우하였다. 예양이 말하였다. “나는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으나 그 두 사람은 모두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우하였으므로 나도 평범한 사 람으로 그들에게 보답하였던 것이오. 그러나 지백은 나 를국사(國士 : 온나라에서가장뛰어난인물)로대우하 였으므로나도국사로서그에게보답을하려는것이오.” 그러자 양자는 한숨 쉬고 크게 탄식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 예자(豫子)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다한 명성 은 벌써 성취되었고, 내가 그대를 용서해 주는 것도 이 제는 충분히 할 만큼 하였다. 이제 그대는 각오해야 하 네. 나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네.” 그리고는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그를 포위토록 하니 예양이 말했다. “제가 듣건대 ‘현명한 군주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이름을 덮어 숨기지 않으며, 충신은 이름을 위해 죽는 의로움이 있다.’고 하였소. 지난번에 그대가 나를 관대 하게 용서한 일로 천하에서 그대의 어짊을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소. 오늘 일로 나 또한 죽어 마땅하나 모 쪼록 그대의 옷을 얻어 그것만이라도 칼로 베어 복수 의 마음을 청산하고 싶으니, 그것이 될 수 있다면 죽 어도 한이 없겠소. 무리로 청하는 것은 아니며 내 본 심을 말하는 것뿐이오.” 이 말을 들은 양자는 그의 의로운 기상에 크게 감탄 하고 하인에게 옷을 가져 오도록 하여 예양에게 주었 다. 예양은 칼을 뽑아 세 번을 뛰어올라 베고는 “나는 이 사실을 지하의 지백에게 보고하리라.” 하고, 마침내 칼에 엎어져 자살하였다. 예양이 죽던 날 조(趙)나라의 선비들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지금부터 약 2,40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예양 이야말로 자기를 알아준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의로운 선비가 아닌지요?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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