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5월호
69 주인공은 소프라노 가수 ‘세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세라는 베이스 주자를 쳐다볼 기회조차 없다. 그가 누군지도 모르며 관심도 갖지 않는다. 단지 관심을 끌지 못하는 베이스 연주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참담한 현실인가. 때로는 못생긴 악기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싶은 충동 이 일어나기도 할 것이고, 보수와 대우 면에서 형편없 는 오케스트라 단원 직을 집어 던지고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싶은 마음이 해일처럼 밀려오기도 할 것이다. 콘트라베이스 주자의 예술적 고뇌 주인공은 소프라노 가수 ‘세라’를 진심으로 사랑하 고 있다. 그러나 세라는 베이스 주자를 쳐다볼 기회조 차 없다. 그가 누군지도 모르며 관심도 갖지 않는다. 단지 관심을 끌지 못하는 베이스 연주자라는 이유만으 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참담한 현실인가. 자기 세계에서 중심부에 위치하지 못하고 주변부만 맴돌며 사랑으로부터 소외된 자의 쓸 쓸한 고독이 「콘트라베이스」의 전편에 흐르고 있다. 그러나 쥐스킨트는 베이스 주자가 소외의식에 젖어 항상 주변부만 맴돌며 방황하도록 방관하고만 있지는 않다. 아니, 소외라는 표현 자체가 어쩌면 오류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 세라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오케스트라의 평온을 해하는 위험한 행동을 결행 할 계획까지 세운다. 그는 콘트라베이스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으며 베이스 주자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숙명적으로 콘트라베이스를 끌어안고 일생 을 마칠 지도 모른다. 어느 철학자의 말을 빌리면, 창조는 선천적인 재능 의 소유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방면에 일생을 기울여 노력한 결과의 산물이라고 한다. 따라 서 어느 한 분야에 일생동안 모든 정신력을 집중해서 종사한 사람은 그 방면의 천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 서 콘트라베이스의 주인공은 콘트라베이스에 관한한 천재인 것이다. 천재는 항상 어느 한 분야 앞에 머물러 있고 놓여 있다. 즉 ‘존재(存在)’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인 식이야말로 소외에서 해방되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 다. 우상숭배나 복종적 숭배로부터 진정 벗어나는 것 이다. 쥐스킨트는 주인공의 예술적 고뇌를 통해 우리 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는 방법을 명징(明澄) 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콘트라베이스」는 쥐스킨트가 34세 때 어느 한 극 단의 제의로 쓰여진 희곡이다. 그는 이 희곡으로 인해 단번에 그의 이름을 세계 문단에 알렸다. 「콘트라베이 스」는 ‘음악 교양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악기나 작 곡자, 지휘자, 연주자, 음악용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독 자에게 강의하듯 들려준다. 「콘트라베이스」는 우리나라에서도 남성 모노드라마 로 무대에 올려진 바 있다. 연극을 보지 못한 것이 못 내 아쉽지만, 아래 주인공의 절규는 아직도 내 귀에 이 명(耳鳴)으로 남아 징징 울리고 있다. “저는 사실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올시다! 공무원 신분을 가진 천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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