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5월호

고전의 향기 ▶ 고사성어(故事成語) 이야기 (6) 국사무쌍 (國士無雙) 진 영 환 ■ 법무사(서울동부회) · 대한법무사협회 감사 1) 임동석 역주 『사기열전 제2권』 p. 707~747, 김원중 옮김 『사기열전 1』 p. 773~813, 최인욱·김영수 역해 『사기열전 1』 p. 461∼488 ‘국사무쌍(國士無雙)’이란 ‘온 나라에서 견줄 사람이 둘도 없는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는 말 인데, 한왕(漢王) 유방(劉邦)에게 승상(丞相)인 소하(蕭何)가 한신(韓信)을 추천하면서 한 말입 니다. 『사기(史記)』 「회음후 열전(淮陰侯 列傳)」 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 : ?~B.C.196)은 회음(淮陰) 사람으로 처음 평민일 때에는 가난 한데다가 일정한 직업도 없어 항상 남의 집에 얹혀 얻어먹고 지내다 보니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싫어하였다. 일찍이 하향(下鄕)의 남창(南昌)에 있는 한 정장(亭長)의 집에서 여러 번 얻어먹은 일이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정장의 아내는 한신을 귀찮게 여긴 나머지 새벽에 밥을 지어 침상 위에서 식사를 마치고, 식사 시간에 맞춰 한신이 가도 밥을 차려 주지 않았다. 그들의 속을 짐작한 한신은 마침내 화를 내면서 발길 을 끊었다. 그 이후에도 회수(淮水)에서 낚시를 하면서 무명 빨래를 하던 여인에게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장바닥에서 젊은 무뢰한(無賴漢)의 바짓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 사람들로부터 겁쟁이라 는 비웃음을 사는 등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秦始皇)이 죽고 나 서 진승(陳勝)의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반 란이 일어나는 난세(亂世)에 항우(項羽)의 숙 부 항량(項梁)이 회수(淮水)를 건널 무렵(B.C. 209), 한신은 칼 한 자루에 의지하여 항량을 따라가 밑에 있었으나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 하다가 항량이 전사하자 항우 밑으로 가서 낭 중( )이 되어 여러 차례 계책을 올려 보았 지만, 항우는 그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B.C. 206) 마침 한신은 촉(蜀)으로 들 어가는 한왕(漢王) 유방(劉邦 : B.C.247 ~ B.C.195)을 따라 초(楚)나라에서 도망쳐 한 (漢)나라에 귀순하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한신 은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연오(連敖 : 곡식 창고 70 『 』 201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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