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6월호

69 황사영이 쓴 백서는 정주 역참의 마부 ‘마노리’라는 자에 의해 북경으로 가는 도중 발각되어 황사영은 배론 토굴에서 체포된다. 정약전은 사학죄인( 邪學罪人 )이란 명목으로 흑산으로 귀양 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들보에 매달린 아우 정약종이 그를 살렸다. “나의 형 정약전과 아우 정약용은 심지가 얕고 허약해서 신앙이 자리 잡을 만한 그릇이 못된다.” 부름을 받아 벼슬길에 나아갈 때까지 감고 다니리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황사영은 그의 장인어른 정약현의 눈 빛을 받고 소년등고(少年登高)의 부끄러움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온 후 손을 감싼 비단천을 풀어버린다. 황사영이 스무 살이 넘도록 정조는 황사영을 부르 지 않았다. 황사영은 처숙부 정약종에게서 교리를 배 운 뒤로 출사를 단념한다. 황사영은 처가동네 마재에 신접살림을 차렸다가 서울로 이사한다. 서울에서 황사 영 부부는 중국인 신부 주문모에게 세례를 받는다. 천주교 받아들였던 민초, 아녀자들 그려 세례를 받은 황사영은 그의 종 육손이를 면천시켜 준다. 육손이는 제천에서 삼십리를 더 들어간 ‘배론’이 란 마을에 찾아들어 옹기를 굽고 생활한다. 배론은 황 사영이 토굴에서 백서를 쓴 곳으로 많은 사람의 순교 로 인해 현재 천주교 성지로 지정되어 있다. 황사영이 쓴 백서는 정주 역참의 마부 ‘마노리’라는 자에 의해 북경으로 가는 도중 발각되어 황사영은 배 론 토굴에서 체포된다. 황사영이 처형된 곳은 서소문 밖 사형장이다. 현재는 절두산 성지로 보존되어 있다. 정약전은 사학죄인(邪學罪人)이란 명목으로 흑산으로 귀양 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들보에 매달린 아우 정약 종이 그를 살렸다. “나의 형 정약전과 나의 아우 정약용은 심지가 얕고 허약해서 신앙이 자리 잡을 만한 그릇이 못된다.” 정약전은 흑산에 머무르는 내내 천주를 배반하고 목숨을 연명한 자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정약전은 흑산 부근의 생태와 어류 등을 관찰하고 기록해서 『자 산어보(玆山魚譜)』란 책을 남긴다. 정약전이 획득한 흑 산도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에 대한 정보는 그곳에서 사 귄 ‘창대’라는 청년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창대는 흑산 어부 장팔수의 자식으로 그가 하는 일 이란 하루 종일 포구에 나가 머언 바다를 응시하며 생 각에 잠겨 있거나 물고기 배를 가르고 속을 들여다보 는 일이었다. 그는 물고기의 언어를 알아들었다. 숭어 몸뚱이에 새겨진 무늬는 숭어가 헤엄쳐 가면서 부딪친 물살의 무늬라는 것을 알아낸 것도 순전히 그가 관찰 하고 사유해 낸 결과물이다. 정약전을 수발들던 과부 순매는 그의 아들을 낳는 다. 아이가 첫돌이 되던 날 정약전은 서당을 열고 아이 들에게 천자문과 소학을 가르쳤다. 정약전은 흑산도에 서 1816년(순조16년)에 생을 마감한다. 소설 「흑산」에는 황사영과 정약전의 삶의 이중주가 잔잔하게 펼쳐지지만, 그밖에도 천주교를 받아들였던 민초들과 아녀자들의 삶이 씨줄과 날줄로 베를 짜듯 정치(精緻)하게 엮여있다. 전라도 서망땅 소작농의 처 오동희, 비장 박차돌과 그의 누이동생 박한녀, 마포나 루 새우젓장수 강사녀, 궁궐에서 쫓겨난 궁녀 길갈녀, 교하 현감의 노비 아리, 남대문 밖 옹기장수 최가람 노 인 등이 그들이다. 소설 「흑산」은 ‘유배와 순교’라는 엄청난 사건을 다 루고 있음에도 어조는 매우 어눌하고 조용하다. 소설 가 김훈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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