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 흐느껴 울면서 자기가 먹을 음식을 나눠 줍니다. 그런데 사람을 써서 그 사람이 공(功)이 있어 마땅히 벼슬 을 봉해 주어야 할 경우가 되면 봉해줄 벼슬의 직인을 새겨 그것을 주려 하다가도 주기가 차마 아까워 그 직인 의 모서리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손에 쥐고 주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이것은 이른바 ‘부인(婦人)의 인(仁)’이란 것입니다. 항왕은 천하에 패(覇)를 외치며 제후들을 신하로 하고 있으나, 관중(關中 : 중국 秦의 首都로 현재 섬서성 서안시 일대)에 머무르지 않고 팽성(彭城)에 도읍을 정했습니다. 또 의제(義帝)와의 맹약을 어기고 자기와 가 까운 제후들을 왕(王)으로 봉했는데, 그것은 공평치 못한 일입니다. 제후들은 항왕이 의제(義帝)를 옮겨 강남 (江南)으로 쫓아 버리는 것을 보자,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가 그들의 임금을 내쫓고 좋은 땅을 골라 스스로 왕 이 되었습니다. 또 항왕의 군사가 지나간 곳으로 학살과 약탈을 당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천하의 많은 사람 들이 항왕을 원망하고 있고, 백성들은 그를 마음속으로 따르지 않은 채 다만 그의 위력(威力)에 눌려 있을 뿐 입니다. 그러므로 항왕은 이름만은 패(覇)라 부르고 있으나 실상은 천하의 인심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위세는 약해지기 쉬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참으로 항왕이 하는 것과는 달리, 천하의 무용(武勇)을 가진 사람을 믿고 쓰신다면, 천하에 당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천하의 성(城)과 고을들을 공신의 봉지(封地)로 주시게 되면 심복하지 않을 사 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의(正義)의 싸움을 내걸고,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장사(壯士)를 거느리시게 되면 패(敗)해 달아나지 않을 적(敵)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삼진(三秦)의 왕인 장한(章邯)·사마흔(司馬欣)·동예(董翳)는 진(秦)나라 장군으로서 진나라 자제(子 弟)를 거느리기 몇 해 하는 동안, 싸워서 죽고 도망친 사람의 수를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의 많은 군사들을 속여 제후에게 항복을 했었는데, 신안(新安)에 이르자 항왕이 진나라의 항복한 군사 20여 만 명을 속여 구덩이에 묻었고, 다만 장한·사마흔·동예만이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나라의 부형 (父兄)들은 이들 세 사람을 원망하고 있으며, 그 원한은 뼈에 사무쳐 있습니다. 지금 항왕은 그의 위세를 빌어 이들 세 사람을 왕으로 봉하여 주기는 했으나, 진나라 백성들로 세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선 무관(武關)을 통해 관중(關中)으로 들어가시자, 조그마한 위협이나 해독도 더한 일이 없 이 진(秦)나라의 까다로운 법률을 다 없애 버리고, 진나라 백성들과 다만 삼장(三章)의 법을 약속하셨습니다. 진나라 백성들로 대왕께서 진나라 왕이 되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후들과의 약 속에 따르면 대왕께서 당연히 관중(關中)의 왕이 되셔야 했습니다. 관중의 백성들은 모두 이것을 알고 있습니 다. 그러기에 대왕께서 항왕으로 인해 정당한 처우를 받지 못하고 한중(漢中)으로 들어오시게 되자 진나라 백 성들은 누구나가 원통해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실정이므로 이제 대왕께서 전력을 다해 동쪽으로 나아가시 게 되면, 삼진(三秦) 땅은 격문(檄文)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제야 한왕은 크게 기뻐하며, 한신을 늦게 만난 것을 아쉽게 생각했고, 한신의 계획에 따라 군사를 일으켜 삼진(三秦)을 평정하고, 마침내는 항왕을 해하에서 크게 깨뜨려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고 한(漢)의 초대 황 제(皇帝)가 되었다. 63 • ` ... `• _ E―-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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