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7월호

64 수상 71il~ 人生高地75 고을 김 철 환 1 법무사(서울중앙회) 인생고지 75! 고지임에 틀림이 없음에도 왜? 내가살아온길의숫자? 아니면 내 철들어서 시간의 분침을 터득하면서 손꼽아 헤어 본숫자? 75년이라는 숫자는 지금까지 살아 온 내 생애 숫자로다. 일본 강점기에 태어난 우리들. 한국학교, 일본학교 또는 중국학교 등 조선 피 흐르는 산하에서 그 지역의 ‘쌍말'부터 배움 시작. ‘해방’은우리 모두를한곳으로모여?모여! 휘날리는 태극기 아래로 뜨거운 가슴들 모여 ‘대한민국’ 號에 모두가 모여서 “어서 어서, 어서 가자” 어서 가. 젊은 피가 출렁대는… 저기 저 곳으로 어서 가려고 주린 배 움켜잡고 가고 있는데. 그5년후 대한민국 지도 위도 38도선 저쪽에서 쏜 대포알이 그 38도선 남쪽에서 꽝꽝. 그날은일요일 밥 먹듯 굶어 누리끼리한 맨 얼굴의 착한 어린이들 산에 올라가 침뿌리로 배를 채우고, 냇가로 달려가 그물 던져 건져 올린 송사리 몇 마리 둥근 돌멩이 부딪쳐 얻은 불씨로 검불나무 가지 잘도 태운다. 호박 잎에 싸인 송사리는 잘도 익고. 동네 구장님 면사무소에 다녀오시는가 보다. "안녕하셔유" 합창 소리로 인사한다. “이놈들아. 내일부터 학교가 쉰단다. 그러니 집에서 일이나허구. 학교에 가지 말라는명령이 왔단다. 허니 그리 알거라.” ‘‘예? 왜유?” 당연한 질문에 ‘‘저 북쪽에서 쳐들어 온단 다.”구장님의 이 한마디로학교에 안가도된다구요? 실컷 놀자. 놀자. 놀자, 놀자? 그럼 공부는 언제 하고? 할아버지 가끔 철따라 향교에 다녀오셔서는 하얀창호지에싸인하얀떡 몇 개 주시면서, ”이 할애비는 향교에서 막걸리와 국수를 먹었느니라 이 떡 너희들 나누어 먹거라.” 손자 손녀 몇 놈 먼저 떡에 손을 대려할 때 가는 회초 리로 손등을 치시면서 ”이놈들. 너부터 한 점, 그 다 음 너’’ 공평한 분배 뒤에 항상 이르시는 말씀. "주자 께서는 소년이로 학난성 .. ” 그 후의 말씀은 없으시고 빙그레 웃으며 옆으로 누우 신다. 할아버지는 측은한 눈빛으로 허기진 손자들 바 라보며 슬퍼하신다. 한마디로 어렸을 적부터 학문을 열심히 닦으라고 하셨는데 전쟁나면 학교는 쉰다. 왜? 이렇게 그렇게 지내며 소년은 늙기 쉬워 어렸을 적부터 학문을 닦는 것처럼 하여 살아왔다오. 그러나 나라에서는 항상 배고픈 소리 못 살겠다, 라는 함성은 이 땅에 가득하고 그리고 학생들의 자유라는 외침에 4.19 혁명! 『 Ii i +v r 』2 01 3\ ::!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