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8월호

64 고전의 향기 ► 고사성어(故事成語) 이야기(9) (破釜沈舟) r (~ 「 ◄ 7 '> 진 영 환 I 법무사(서울동부회) • 대한법무사협회 감사 8-'l;!.2. ‘‘파부침주(破釜沈舟)"란 “밥을 지을 가마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결사적인 각오를 가지고 싸움에 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B. C. 207년 초(楚)나라의 상장군(上將軍) 항우(I頁羽)가 진(秦)나라 군대와 싸워 크게 이길 때의 이 야기가 『사기』 「항우본기」에 나오는데, 이와 관련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1) 항우(項羽)의 재기과인(才氣過人) 항적(I頁籍 : 字는 羽)은 하상(下相 : 지금의 강소성 숙천시) 사람으로, 진(秦)나라에 멸망당한 초(楚)나라의 장군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키가 8척(尺)이 넘고 힘은 정(鼎 : 귀가 두 개이고 다리가 셋인 커다란 솥)을 들어 올릴 수가 있었으며 재기 (才氣)가 다른 사람을 능가해 오중(吳中 : 지금의 강소성 소주시)의 젊은이들은 모두 항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진(秦)나라 말기인 B.C. 209년에 숙부(叔父) 항량(I頁梁)을 따라서 회계(會稽)군수(郡守) 은통(殷通)의 목을 베고 오중에서 군사를 일으켜 정병(精兵) 8,000명을 얻어 회수(淮水)를 건너가니, 경포(縣布)와 포장군(蒲將 軍)이 또한 병사들을 항량에게 귀속시켜 모두 육칠만 명이 되었고, 그때쯤 초빙한 칠순(七句)의 모사(謀士) 범 증(范增)의 계책에 따라서 초(楚)나라 회왕의 손자 웅심(熊心)을 찾아내 초(楚)나라 회왕(懷王)으로 삼고, 항 량은 스스로 무신군(武信君)이라 불렀다. 항량의 군사는 항보현(亢父縣)과 동아(東岡)에서 진나라 군사를 쳐서 이겼고, 서쪽으로 진격하여 정도(定 陶)를 쳐서 또다시 진나라 군대를 쳐부수고, 항우 등이 이유(李由 : 진나라 丞相 李斯의 아들)의 목을 베자 항 량이 더욱 진나라를 얕갑아보게 되었는데, 위기감을 느낀 진나라가 전군(全軍)을 일제히 일으켜 장한(章郡) 의 군대를 원조하고 초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정도에서 크게 무찔렀을 때에 적을 경시(輕視)하던 항량은 전사 를하고말았다 항량이 전사하자 초왕(楚王)은 모사(謀士) 송의 (宋義)를 상장군으로 삼고, 항우를 노공(魯公)에 봉해 차장 (次將)으로 삼고 범증을 말장(末將)으로 삼은 뒤에, 진나라의 장군 장한의 공격을 받고 있던 조(趙)나라를 구 원하라고 지시했고, 왕명을 받은 상장군 송의가 대군을 이끌고 행군하다가 안양(安陽)에서 46일 동안이나 진 1 ) 노만수 옮김, 『史記英選』(도서출판 일빛) p. 21 ~47, 신동준 편역, 『실록 초한지』(주식회사 살림출판사) p. 99~177 『표1 0 vr 』2 01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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