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군하지 않고 머못거리자, 항우가 상장군 송의에게 "신속하게 진격을 해서 거록성(銀鹿城)을 포위한 진나라의 군사를 초나라 군사가 바깥에서 치고 조나라 군사는 안에서 호응한다면 진나라 군대를 쳐부술 수 있다”고 건 의했지 만 받아들이 지 않자, 송의의 목을 벤 뒤에 전군율 장악하고 회왕에게 그 사실율 보고하자 회왕은 항우 를 상장군으로 삼고, 당양군(當陽君 : 경포)과 포(蒲) 장군을 모두 항우의 휘하에 속하게 했다. 파부침주(破釜沈舟) 항우가 송의를 죽이자 그의 위세(威勢)가 초(楚)나라를 뒤흔들었으며 명성은 제후(諸侯)들의 귀에까지 들 렸다. 이에 항우는 경포와 포 장군을 보내 병사 2만 명을 이끌고 장하(;章河)를 건너 기록성을 구원하게 했다. 싸움을 벌여 성과가조금밖에 없자조나라의 장군 진여(陳餘)가 다시 더 많은 병사를요청했다. 항우는 이에 군대를 모두 이끌고 장하를 건넌 후,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렸으며” 막사를 불사르고사흘분의 군량만지니게 해서 병졸들에게 죽는한이 있더라도살아돌아을마음이 없음을보여 주 었다2) 그리하여 항우는 도착하자마자 왕리(王離)를 에워싼 후, 진나라의 군사와 아홉 번 전투를 벌인 끝에 그 용 도(雨道 : 길 양쪽에 벽을 쌓아 군량을 운반하던 통로)를 끊어 크게 무찌르며 소각(蘇角)을 죽이고 왕리를 포 로로 잡았다 십한(涉間)은 초나라에 항복하지 않고 스스로 분신자살하였다. 이때 초나라 병사는 제후의 군사 들가운데으뜸이었다 거록성을 구하러 은 제후의 군대도 외곽에 십여 군데 진지를 구축하였으나 감히 군사를 싸움터로 내보내지 못했고, 초나라 군사가 진나라 군사를 치는데도 제후들의 여러 장수들은 모두 영루 위에 서서 바라보고만 있 었다 초나라군사는모두 한 사람이 열 사람을 당해낼 만큼용맹함을 떨치지 않은 자가 없었고, 초나라 병사 들의 함성이 천지를진동해 제후의 군사들은두려워 벌벌 떨지 않는자가없었다. 진나라 군대를 쳐부수고 나서 항우가 제후군 장수들을 불러 군영의 문으로 들어오게 하자 모두들 무릎을 꿇고 기어서 항우의 앞으로 나왔지만 감히 항우를 쳐다보지도못했다. 그리하여 항우는 비로소 제후군(諸侯軍 : 진나라에 대항하는 제후들의 연합군)의 상장군이 되었고 제후들 이 모두 그의 휘하에 배속되었다. 항우는 관중(關中)으로 계속 진군해 마침내 B.C. 206년 진(秦)의 수도인 함양(咸陽)에 입성, 투항한 진 3세 (秦三世) 왕 자영(子嬰)을 죽인 뒤 궁실(宮室)을 불태운 E恒t, 초 회왕(懷王)을 형식적으로 높여 의제(義帝)라 하고,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실시해 관중에 먼저 입성한 패공(浦公) 유방(劉邦)을 한왕(漢王)으로 삼아 한중 으로 쫓아내고, 진(秦)의 항장(降將) 장한(章郡) 등을 삼진(三秦)의 왕으로 봉해 한왕을 막게 하고, 자신은 서 초패왕(西楚覇王)이 되어 팽성(彭城)을 도읍으로 정했다 .• 2) ”項羽乃惑引兵渡河, 皆沈船, 破釜區, 燒國舍, 持三日種, 以示士卒必死, 無―還心'’ ` & `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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