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9월호
수상 지팡이로걷는나이 박 형 락 ■ 법무사(서울북부회) 74 『 』 2013년 9월호 출입을 그만둘지언정 지팡이는 안 쥔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밤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이게~요?” 어렸을 때 누님이 내게 이런 수수께끼를 냈다. 어 리둥절했던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고, 누님은 “그것 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 까닭을 설명해 주었다. 사 람이 늙어 걸음이 불편해지면 지팡이를 짚고 걸으니 두 다리와 지팡이 해서 세 발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사실 지팡 이에 의지할 때 걸음은 좀 느리더라도 가고 싶은 곳으 로 갈 수 있으니 지팡이는 얼마나 좋은 물건인가. 그 런데 남에게 늙어 보이는 것이 싫어서인지 걷기에 고 통스러워하면서도 지팡이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를 많 이 보게 된다. 이희승 교수가 쓴 「지팡이」라는 수필에 이런 이야 기가 나온다. 그 분이 서대문 밖 둥그재(金華山) 중턱 에 살 때 바깥출입을 하려면 언덕길을 오르내려야 하 는데, 춘추가 80을 넘긴 고령의 선친이 지팡이를 짚 지 않고 힘겹게 다니시기에 사람을 시켜 지팡이를 하 나 사드렸는데, 선친은 그 지팡이를 이용하시지 않았 다는 것이다. 87세로 타계하실 때까지도 “기운이 떨어져서 차라 리 출입을 그만둘지언정 지팡이는 안 쥔다”고 하셨다 면서 이 교수 자신도 친구로부터 받은 지팡이를 집어 던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예전에도 지팡 이 짚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도 나이 80을 넘긴지 몇 년이 되었으니 지팡이를 짚고 다녀도 그리 창피할 일은 아니지만, 아직은 다리가 성하여 그 런지 지팡이에 손이 가지 않는다. 밤에는 세 발로 걷는 ‘늙은 사람’ 그런데 지난 겨울 어느 날이었다. 서울지방에 16센 티의 폭설이 내렸고 그 전날 밤에 또 3센티의 눈이 내 렸다. 기온은 밤낮으로 영하권에서 맴돌고 있으니 견 디지 못한 길은 모두 빙판으로 변했다. 아침 출근시간, 나는 길이 미끄러울 것이라 생각하 고 신발에 아이젠을 하고 나서 ‘지팡이를 짚을까’ 망설 이다가 그대로 떠났다. 빙판에서 넘어지면 노인들은 주로 고관절 뼈를 다 치게 되는데, 그곳이 부러지면 큰 낭패라고 주변사람 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겁주는 말을 들었는지라, 잔 뜩 긴장을 하고 걷다가 곧 늘 다니던 약간 경사진 길 에 다다랐다. 미끄러운 경사 길이니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랫다 리에 힘을 주고 보폭을 좁게 하여 조심하며 어정어정 걸어 겨우 전철역 입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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