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9월호

아들을 불러 지팡이를 가지고 오게 했다. 아들이 부축하고 한 손으로 지팡 이를 짚고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며칠을 집에서 쉬며 등산용 지 팡이를 꺼내 내 키에 맞게 조절해 두었다. 앞으로는 될 수 있으면 만용을 부리지 않고, 위험이 예견되면 지팡이를 애용할 작정이다. 75 이제는 계단으로 해서 승강장까지 가야 한다. 그런 데 계단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왼쪽 오금이 새큰하 면서 통증이 왔다. “앗!” 하고 외마디 소리와 함께 몸 이 왼쪽으로 기우뚱 기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재 빨리 다시 몸을 추슬렀다. 그러다 가만히 거기 있기도 뭐해서 습관적으로 한 발 한 발 통증을 참으며 계단을 내려가 승강장까지 갔다. 하지만 더 이상은 걸을 수가 없었다. 사무실로 다 시 갈 수도 없고,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갈 방법도 없으니 이제 어떻 게 할 것인가? 실로 난감하고 진퇴유곡의 상황이었 다. 지팡이를 짚고 왔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 아닌가, 후회해 보았으나 ‘사후약방문’이라고 소용없 는 후회다. 내가 노쇠해져서 그러는 것이겠거니 하다가 어렸 을 때 누님이 말하던 그 그리스 신화 속 수수께기가 떠올랐다. ‘밤에 세 발로 걷는 동물’이란 바로 나와 같 이 ‘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며 이젠 주저 없이 지팡이를 짚어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벤치에 앉아 전동차 몇 대를 지나 보낸 후에 가까이 사는 아들을 불러 지팡이를 가지고 오게 했다. 아들이 와서 부축하고 나는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걸어서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하 지만 치료받기 전과 별반 차이도 없는 상태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을 집에서 쉬기로 하고, 등산용 지팡이를 꺼내 내 키에 맞게 조절해 두었다. 앞으로는 될 수 있으면 두 발로 걷는 만용을 부리지 않고 위험이 예견되면 세 발로 걷기로 하고 지팡이를 애용할 작정이다. 하늘을 향해 지팡이 한 번 크게 휘둘러 보자!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부르면서 그 역할의 중 요성을 고취한 적이 있다. 그런 때 지팡이는 사람들에 게 없어서는 안 될 최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한 말이다. 장님에게 지팡이는 안내자요, 눈이요, 길이 다. 황혼의 노인에게 지팡이도 이처럼 멀리할 수 없는 형제와 같이 아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한다. 고담(枯淡)의 노경(老境)에 산다면 남을 의식할 것 없지 않는가? 이 세상에 와서 할 일을 다 끝냈다고 생 각하고, 어디로 갈 때 지팡이를 쥐고 걷는 것이지만 가는 건지 오는 건지 모를 정도로 걷자 “여드레 팔십 리 걸음”보다 더 느리게, 그러면 하늘과 땅은 더 넓고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지팡이를 짚고 가다가 몸이 좀 가벼워지고 기분도 상쾌해지면 한적한 곳에 이르렀을 때 건재하다는 증 표로 헛기침 한 번 하고, 하늘을 향해 지팡이를 크게 한 번 휘둘러보는 것도 호연지기가 아니겠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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