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11월호

63 사라졌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고전을 발굴하 게 되며, 이 시기에 인문학이 부활한다. 드디어 인 문학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인문학의 방향은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시 민을 위한 인문학(Civil Humanism)’으로 발전했으 며, 인문학적 성찰의 결과를 시민과 함께 나눈다는 것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시 도이기도 하다. 또 이러한 심화된 인문학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확산되어야 한다. 처음 미국에 하버드대학이 설립될 당시는 서양고 전 강좌가 교육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학생들의 삶 의 태도와 품성의 형성이 교육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앤소니 크르먼, 「교육의 종말」). 그러나 이후 ‘종합 대학’으로 확대되고 학문이 분화되면서 초기의 인문 적 성찰이 자취를 감추었고, 학문은 ‘정보’와 ‘연구’ 로 낙착되었다. 19세기 때 철학자 아서 쇼펜하우어(Arthur Scho- penhauer)는 인문학을 “고전작가들에 대한 연구”라 고 말한 바 있다. 고전을 통해서야 비로소 우리가 인 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고전을 쓴 사람 들에게 배우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고전학이고, 바 로 인문학이다. 왜지금인문학인가? 개인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20세기 초 식민지시대 와 해방과 전쟁을 겪었고, 그 다음에는 국부(國富)를 창출하고 세계 속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달려 왔다. 그리고 지금은 소외된 사람, 그늘진 곳 이 없도록 분배와 복지를 주장한다. 이 모든 소관의 최종적 가치는 안정과 행복이다. OECD 조사에 의 하면, 우리나라 소득수준은 세계 34위인데 행복지 수는 103위이다. 행복이 중심 화두가 되면 그동안 우리가 추진해 왔던 가치들에 대하여 자연히 반성하게 된다. 산업 화의 물신(物神)과 이념의 도그마에 지친 한국사회 가 인문학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으려는 것은 매우 신선하고 고무적인 현상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선 진사회(先進社會)를 위한 필수적 전제(前提)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진정한 선진문화는 인문정신 에서 솟아난다. 삶에 대한 성찰, 균형 잡힌 역사의식, 법고창신(法 古創新)의 문화적 갈증, 관용과 상생의 열린 정신 등 이 나라의 품격을 고양시켜준다. 지금은 일종의 전환의 시기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 지식정보화, 글로벌 경제체제 등 거대한 전환 의 시기에는 그 의미와 맥락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 다. 오늘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인문학이 부각되는 데는 국내적, 국제적 이유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으 며, 인문학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사회적 불안감에 서 출발한다. 경제강국을 위한 질주는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문화를 낳았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경제는 상당히 윤택해졌지만, 삶은 고단하고 허탈하며 환경은 불안 해졌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경쟁과 투쟁의 땅에 서 따뜻한 온기를 찾는 갈망이 베어난 것이다. 국제적 맥락에서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실용적 이유에서 출발한다. 세계는 지식기반경제에서 창조 경제로 옮겨가고 있으며, 지식기반경제에서는 생산 수단을 위한 과학들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 창조경제는 인간 친화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과학기술과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요체임을 강조 하고, 이런 창조경제의 개념은 이미 선진국에서 오 래전부터 이야기되어 온 것으로 전혀 새로울 게 없 으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창조경제의 핵심과 연 결된다. 기존의 사고방식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시각을 탐색하는 것은 인문학의 본성이며 인간의 감성에 대 한 이해를 기반으로 인간친화적인 아이디어를 구성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