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11월호

연애할 때 가장 낭만적이었던 ‘사랑 노래’ 최루탄과 곤봉과 화염병과 짱돌이 난무했던 80년 대 살벌한 학생운동 현장에서 그녀의 22인치 개미 허리와 조그마한 키와 도톰한 입술과 주근깨 뿌려진 귀여운 얼굴은 비현실적이었다. 회색빛 현실을 뚫고 나가기엔 그 벽이 너무 두터워 울고 싶게 막막했던 그 시절, 그녀의 존재는 이 현실 세계와 다른, 또 다 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리란 희망을 주었다. 그런 그녀를 난 늘 예의 주시했다. 격렬한 시위를 마치고 친구의 자취방에서 남녀 대학생들 대여섯은 소주와 새우깡으로 뒤풀이를 했고, 일행 중에 그녀 가 끼어있다는 사실에 난 가슴 부풀고 설레었다. 내 의지가 개입되었다기보다 어떤 우주적 인연이 나를 붙들어 그녀 앞에 앉히게 했다는 느낌. 그 날 이후 난 그녀와 연애를 시작했다. 하나가 하나를 만나 다시 또 다른 하나가 되려 하 고, 외로움이 외로움을 만나 서로의 외로움을 어루 만지려 한다. 연애란, 사랑이란 이렇게 시작된다. 기억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세상 풍경의 일부로 황 량하게 살아가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 순간, 별안 간 온 우주는 나와 내 애인만을 위한 배경이 되어 버 린다. 공기와 햇빛, 구름과 바람, 그늘과 어둠, 심지어 나무에 대롱 매달린 작은 대추알마저도 연인을 돋보 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내 안에 등불 하나 밝혀진 것 같은 그 기적의 느낌. 연애할 때 우리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녀에게 향했던 무수한 발 걸음,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되돌아서야 했던 안타 까움, 갈대같이 흔들리며 하염없이 기다렸던 그 절 실함으로 나의 그녀에 대한 사랑은 깊어만 갔다. 사랑 노래가 ‘땡기는’ 때는 사랑할 때이다. 우리나 라 대중음악 중 가장 낭만적인 사랑노래를 말하라 면 단연 다섯손가락의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을 꼽겠다. 그녀와의 연애시절, 이 노래는 얼마나 귀에 착착 감겼던가. 수요일에는빨간장미를 그녀에게안겨주고파 흰옷을입은천사와같이 아름다운그녀에게주고싶네 슬퍼보이는오늘밤에는 아름다운꿈을주고파 깊은밤에도잠못이루던 내마음을그녀에게주고싶네 한송이는어떨까 / 왠지외로워보이겠지 한다발은어떨까 / 왠지무거워보일거야 시린그대눈물씻어주고픈 수요일엔빨간장미를 - 다섯손가락 「수요일에는빨간장미를」 그러나 가득 찬 달은 이지러지게 마련이고 가득 찬 사랑도 달과 함께 시든다. 그렇게 이별은 다가온 다. 그리고 우린 비로소 잘 익은 술처럼 지독하게 쓰 지만 달콤한 이별 노래를 가슴 아리게 흥얼거릴 수 음악과 인생 하 철 우 ■ 법무사(대구경북회) “ 시린그대눈물씻어주고픈… ” 다섯손가락의 「수요일엔빨간장미를」 72 『 』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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