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11월호
73 있는 면허증을 취득하게 된다. 아직 모르잖아요.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 후텁지근한 8월의 어스름밤에 나는 그녀의 부드 러운 손을 꼭 잡고 묵묵히 길을 걸었다. 손바닥엔 땀 이 배었지만 둘 중 그 누구도 깍지 낀 손을 풀려 하 지 않았다. 그 때 우린 금방 바다 속에서 끄집어 올 린 물고기처럼 싱싱한 20대 초반의 풋풋한 청춘이 었고,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리고 난 며칠 후면 입대해야 했다. 여름밤 파르스름한 달빛은 얇고 매끄러웠으나 이 별의 무게는 우리를 한없이 무겁게 내리 누르고 있 었다. 나는 말문을 여는 대신 흐~흡 심호흡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세월이흘러가면어디로가는지 나는아직모르잖아요 그대내곁에있어요떠나가지말아요 나는아직그대사랑해요 그대가떠나가면어디로가는지 나는알수가없잖아요 그대내곁에있어요떠나가지말아요 나는아직그대사랑해요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족은 사사(sasa)와 자마니 (zamani)라는 독특한 시간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 다. 그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는 한, 죽은 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 사사 ’ 의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 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이들마저 모두 죽어서 더 이상 기억해줄 사람이 없을 때 망자는 비로소 영원 한 침묵의 시간, 즉 자마니로 떠나게 된다. 헤어진 연인이 두려워하는 건 이별 그 자체가 아 니라 사랑하는 자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나 역시 그것이 두려웠다. 사랑, 당장 눈에 보이지 않 아도 난데없이 이는 파도를 보고 그가 생각난다면, 그 아픔이 사랑이다. 사랑이 죽는 것은 사랑하는 이 의 마음에서 사라짐이다. 외로운 사람보다 잊혀진 사람이 더 비참한 것이다. 혼자걷다가어두운밤이오면 그대생각나울며걸어요 그대가보내준새하얀꽃잎도 나의눈물에시들어버려요 그대가떠나가면어디로가는지 나는알수가없잖아요 그대내곁에있어요떠나가지말아요 나는아직그대사랑해요 - 이문세 「난아직모르잖아요」 진짜 사랑은 '당신을 만나기 전엔'과 '당신을 만난 뒤에야'로 구분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삶의 이정 표이자 경계다. 당신을 만나기 전과 만난 뒤가 이처 럼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나에게 세상은 진짜 세상이 아니어야 한다. 입대 후에도 그녀는 나를 떠나가지 않았다. 아니, 그녀의 기억에서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이것이 내 생애 마지막 연애였다. 그리고 내가 처음 알았던 무 렵 싱싱한 포도송이 같던 그녀가 이제 그 포도송이 를 닮은 눈매를 가진 내 아이들의 어미가 되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와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은 나의 애창곡이다. 평생 수 백 번은 불렀을 것이 다.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그 순간 연애의 열정이 선사했던 그 샘솟는 기쁨이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진 다. 그녀도 그렇게 느끼는지는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럴 땐 공연히 소심해지는 것이다. ▲ 다섯손가락(오른쪽)과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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