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12월호
65 부가 계셨습니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잠시후 대청봉에 이르렀다. 그 무덥던 여름 날씨는 어디로 실종된 것일까. 찬바람 쌩쌩 불고 하늘엔 커 다란 구름떼들이 몰려와 설악산 절경을 주렴 속에 감 춘다.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각 문파 고수들이 대청봉 표지판을 향해 일제히 방아쇠를 당기느라 분 주하다. 화염마왕의 교훈, “자중자애하라” 청아는 대청봉 정상 뒤 바위 숲으로 일행을 안내했 다. 스마트폰으로 바위를 비추니 갑자기 바위가 양쪽 으로 벌어지며 커다란 동굴이 나타났다. 청아를 따라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야광주가 대낮처럼 환히 밝히고 있었다. 몇 개의 석실을 지나고 커다란 석실 앞에 이르렀 다. 갑자기 석실 문이 열렸다. 청아가 이끄는 데로 석 실 안으로 들어갔다. 석실 안은 붉은 빛 주단이 깔려 있고 용상에는 면류관을 쓴 신선이 앉아 있다가 일행 들에게 탁자에 앉을 것을 시늉했다. 그 옆에는 농염한 풍모의 중년여인이 커다란 부채를 들고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하하,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네, 내 천리통에 그 대들은 벌써 포착됐지, 하여 청아를 보내 안내한 것이 며 어부인 나찰녀로 하여금 시원한 바람으로 그대들 의 흘린 땀을 거둬 준 것이지.” 일행들은 의아했다. 우선 화염마왕의 옥골선풍의 풍모에 압도됐고, 그의 태도에 또 놀란 것이다. 청아 가 차를 일행들에게 건넨다. 그윽한 향내가 코끝을 간 질이는데 평생에 처음 대하는 차다. “그대들은 들으시오, 나 우마왕은 삼천갑자 동박 삭과 동문수학했으니 내 나이 미뤄 짐작이나 하겠 소? 당나라 시절 화염산에서 손오공과 건곤일척 승부 를 겨루다가 내가 패했소. 그건 서유기에 나오는 얘기 니 더 긴 말은 않겠네. 이 나이 무슨 욕심이 있어 개미 눈썹보다도 작은 이 나라를 취하고 그대들을 못살게 한단 말이오.” 우마왕은 배꼽까지 늘어진 흰 수염을 쓸어내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세상에 젤로 무서운 게 오해요. 오해가 반목을 낳 고 분쟁을 낳는 법. 그대들은 나를 오해해 대청보궁으 로 공격 온 것도 내 잘 알고 있는 바네. 전자에도 말했 듯. 말년에 노구를 편히 쉬다 갈 곳을 찾다보니 해동 성국이 적지요. 그중에도 설악산 대청봉이 내가 쉬기 엔 풍광이 참으로 맘에 들었지. 일부 몰지각한 등산객 이 이곳저곳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바람에 파리 들이 들끓어 심사가 뒤틀리기는 해도.” 다시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인 후 말을 이어간다. “마침 봉정선인이 멀리 떠날 일이 있다고 하여 내가 보궁에 잠시 기거하고 있는 중이지. 오랜 세월 화기 (火氣)를 관장하던 터라, 그대들 나라에 왔을 때도 내 몸은 용광로나 다름없었네. 허나 이제 화기가 잦아지 고 있으니 광복절 지나고 나면 기온이 평온해질 터이 니, 덥다고들 너무들 호들갑 떨지 말고 자중자애하게. 여름 날씨는 여름다워야 하는 법, 그래야 벼 나락도 익고, 오곡백과가 풍성한 법. 올해는 그대들이 흘린 땀만큼 농사는 풍년이 들거요.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그만큼 진한 법이라네. 어려워 말고 차를 들게. 속세 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주 귀한 차지. 그리고 한마디만 더 하겠네. 선인들은 속세에 관심 도 없고 관여도 하지 않지. 하지만 이 나라 와 보니 똑 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서로 편 갈라 자기들만 옳다 고 싸우는 모습 보고 한 번쯤 혼내줄까 하는 생각도 있 었지. 허니 그대들 하산하거들랑 진실로 나라와 국민 을 위하는 일이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들 이르게. 어쩌면 그로 인해 커다란 재앙이 닥칠 수도 있지.” 우마왕과 헤어져 내려오는 길은 상쾌하기 그지없 다. 대청봉에서 내려오는 산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한 기를 느끼게 했다. 강파른 오색의 하산 길도 그들에게 는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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