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12월호
66 『 』 2013년 12월호 ‘조르바’는 나에게 아버 지입니다! 지난 여름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조금만 더워도 온 몸이 후줄그레 젖어버리 는 아내는 연신 도시탈출을 외쳐댔고, 나는 고드름장 아찌처럼 허언만 일삼다가 여름 막바지에 이르러서 야 짐을 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배낭에는 니코스 카 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을 쑤셔 넣고 지리산의 칠선계곡으로 향했다. 칠선계곡은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한라산의 탐라 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 중 하나로 그 험 준함과 수려한 비경에 있어서는 다른 곳에 결코 뒤 지지 않는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칠선계곡은 골이 깊고 험난하여 등산구역으로는 추성리 주차장 에서 비선담까지만 상시 개방하고 있다. 등산을 목적으로 칠선계곡을 찾은 것이 아니었기 에 우리는 추성리 주차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하 고 용소까지 천천히 걸어가 용소 근처 바위에 팔베 개를 하고 누웠다. 일찍이 서산대사도 지리산을 “수 려하지는 않지만 장대하다(壯而不秀)”고 일컬었지 만 골 깊은 칠선계곡 바위에 누워 한가롭게 떠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장엄함이 피부에 와 닿았다. 삼십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계곡 안에 서는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서늘하게 식혀주어 책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영혼의 자서전』을 펼쳐들자 카잔차키스는 조르 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내삶에가장큰은혜를베푼요소는여행과꿈이었 다.죽었거나살았거나,내투쟁에도움이된사람은극 히드물다.하지만내영혼에가장깊은자취를남긴사 람들의이름을대라면나는아마호메로스와, 붓다와, 니체와,베르그송과,조르바를꼽으리라.” 빠알간 고추잠자리가 조르바 위에 앉아서 묻고 있다. 당신에게 조르바는 무엇이요? 그는 대답한다. 조르바는 나에게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 는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나요? 그는 삶을 사 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고추잠자리가 날아가 버릴까봐 나는 차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오랜 동안 시간도, 공간도, 멈추어 서 있었다. 앤소니 퀸이 열연하고 마이클 카코야니 스가 감독한 영화 「희랍인 조르바」가 뭉게구름 위에 상영되고 있었다. 앤소니 퀸이 산투르를 연주하고 있다. 흥이 오르자 그는 포도주를 마시며, 뿌리며, 격렬하게 춤을 춘다. 해변에서 춤을 추는 사람은 어느덧 두 사람이 되 고 그들은 어깨동무하고 춤을 추다가 기진하여 모래 밭에 쓰러진다. 조르바는 삶의 진실을 이미 알고 있 었지만 말로 표현할 줄은 몰랐다. 그는 그것을 춤으 로 얘기했다. 법무사의 서재 끊임없이투쟁하는 ‘자유인’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임 익 문 ■ 법무사(전라북도회)
Made with FlippingBook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