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12월호
“아빤 뭐 그리 복잡하게 음악을 들어요?” 음악 듣기는 생산성이 관건인 노동이 아니다. 즐거 움이 목적인 놀이다. 나만의 음악 듣기 놀이 비법. 우 선, 샤워를 한다. 그리고 커피를 내린다, 진하게. 머 그컵을 들고 음악방(3평 규모의 오디오 전용룸. 앰프, 스피커, CDP와 턴테이블 등 오디오 기기 그리고 조명 과 1인용 소파 등 음악듣기에 필요한 물건 외에는 아 무 것도 없다)으로 숨어 들어간다. 진공관 앰프에 전원을 넣고 예열을 시작한다. 예열 시간은 30분. LP 3천여 장, CD 5천여 장. 30여 년을 수집한 것들이다. 이것들을 느릿느릿 살펴본다. 각각의 음반에는 과거의 내가 살아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마주치는 그 순간, 오늘 들을 앨범이 결정된다. 듀크 조단 트리오(Duke Jordan Trio)의 『Flight to Denmark』 LP판. 눈 내린 숲 속에 한 남자가 서 있는 표지를 한참동안 물끄러미 본다. 뒷면의 수록곡 을 눈으로 훑는다. 턴테이블을 세심히 세팅한다. 신중하게 판을 꺼내 클리너로 정성스레 닦는다. A 면 1번 트랙 곡 「No Problem」 위에 턴테이블 바늘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면, 기어이 그리고 마침내 음악 이 흘러나온다. 한 곡을 듣기 위해 50분이 걸렸다. 너 무 더딘가? ‘멜론’ 같은 온라인 음악서비스를 통해 스마트폰으 로 음원을 다운로드해서 듣는 딸아이는 철없는 아비 의 이런 놀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핀잔한다. “아빤, 뭐 그리 복잡하게 음악을 들어요?” 음반이 사라지고 있다. 형체도 없는 고음질 디지털 음원파일을 필요할 때마다 내려 받아 소비해 버리는 시대다. 음악은 욕구가 충족된 뒤 가차 없이 휴지통에 폐기되는 일회용 콘돔이 되어버렸다. 보름달이 빛나 는 밤하늘에선 은하수를 볼 수 없듯이, 디지털 음원의 편의성이 우리로부터 앗아간 것은 무엇일까? 모두들 직선으로만 달려간다. 생리학의 흥미로운 한 구절이 있다. 바크(M.Bacq)라는 생리학자의 말. “평온, 게으름, 심리적 무관심은 정상 생리학을 유지 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란다. 평온하고 게으르고 무관 심할 때의 인간이 생리학의 대상이란 것이다. 참 의미심장하다. 평온하고 게으르고 무관심할 때 의 인간이 정상적인 인간이란 의미로도 들리니까 말 이다. 말을 뒤집으면 분투하는 인간, 부지런한 인간, 신경을 곤두세우는 인간은 정상적인 생리학의 입장에 서 볼 때 지극히 병적인 인간이란 뜻인가? 흥미로운 상상 한번 해보자. 군중 속에 첨단의 로 봇 하나가 있다. 그 로봇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최단거리를 경유해서 내게 도달하라.” 자, 사 람의 명령, 그 이후의 로봇의 움직임을 상상해보자. 최단거리를 경유해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로봇은 사람의 머리통을 밟고 지나간다. 어깨며 허리를 가리 지 않는다. 로봇에게 중요한 것은 최단거리이지 사람 은 아니니까. 그 결과 몇 사람의 두개골이 함몰되고 몇 사람의 어깨뼈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이 글 읽는 분들 중, 혹 자신의 모습이 그 ‘로봇’과 유사한가? 기하학에 정통한 어떤 ‘사람’에게 그 명령을 내렸다 고 해보자. 아주 나쁜 놈이 아니라면(이런 나쁜 놈이 아주 많다는 게 문제다) 우회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 단거리를 지향하는 로봇의 길은 직선이다. 대륙간 탄 도미사일이 새떼들의 비행을 고려해 우회했다는 뉴스 음악과 인생 하 철 우 ■ 법무사(대구경북회) 그녀가선물한 LP판엔 그녀의채취도… 듀크조단트리오(Duke Jordan Trio)의 『Flight to Denmark』 68 『 』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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