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12월호
를 들어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음악 찾아듣는 ‘수고’도 곧 음악 비경제성, 비효율성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가 장 인간적인 길이라면 말이다. 과학은 한 점에서 한 점 을 잇는 가장 가까운 거리는 직선이라고 답하지만, 인 간은 커브 길을 만들어 낸다. 효율성, 생산성 따위의 덕목들은 과학과 기술에게는 최선의 덕목일지는 몰라 도 피와 살이 있는 인간에게는 최선일 수만은 없다. 음 악듣기 놀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난 여전히 음반 매장을 뒤져서 소장하고 싶은 음반 을 구입하기를 즐긴다. 오프라인 음반 매장을 뒤져서 CD나 LP를 구하러 돌아다니는 것은 나에게 유익한 놀 이다. 이를테면 지금은 없어져 버린 출판사에서 나온 책 을 찾아 서점을 모조리 뒤지는데 할애한다는 것은 그 책이거나 꼭 그 CD여서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의 수고를 들인 뒤에 오는 희열과 그 시간만큼 값 어치를 얻게 될 가치를 좀 더 효과적으로 즐기기 위한 놀이다.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이것과 다름이 아니라 생각한다. 동물이나 인간은 모두 배고픔을 느끼는데, 이 가운 데 오직 인간만이 배고픔에 대한 직접적인 충족을 뒤 로 미룰 수 있다. 인간만이 애피타이저를 즐기고 상대 방과 대화를 나누면서 배고픔의 완전한 충족을 뒤로 미룰 수 있다. 이것은 성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 용된다. 성적으로 성숙해지면 동물이나 인간은 모두 성적인 결핍감을 느낀다. 동물들이 발정기가 되면 허겁지겁 짝짓기를 하는 반면, 인간은 이성에게 성적욕구를 느끼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욕구의 충족은 뒤로 미루곤 한 다. 상대방과 와인을 마시며 환담을 나누거나 혹은 가 볍게 애무와 키스를 나누면서 직접적인 성교를 뒤로 미루는 것 등이 바로 이러한 사례다. 아날로그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19집 「헬로(Hello)」를 발매한 조용필은 1만장 을 LP로 찍었다. 국내 유일의 LP 공장인 ‘LP팩토리’ 는 폐업 6년 만인 2011년 9월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 다. 빅뱅의 지드래곤 등 아이돌 그룹들도 LP로 음반 을 발매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LP레코드 매니아의 폭발적 증가로 롤링 스톤즈, U2, 밥 딜런, 데이비드 보위 등 의 앨범이 LP로 제작되면서 체코의 로데니스에 있는 LP 생산업체 ‘GZ미디어공장’은 2013년 LP생산량을 1천만 장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내 음반 판매량을 공식 집계하는 닐슨사운드 스캔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는 중고 음반이 아닌 신규 제작된 LP만 460만 장이 팔렸다. 전년도 390만 장의 기록을 깬 것으로 전년 대비 19%가 성장했다. 닐슨사운드스캔이 1991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1993 년 판매량은 30만 장이었으며 2007년부터 5년 연속 기록을 경신했다. 물리적 형태의 음반이 필요한 다른 이유도 있다. 음악이 물처럼 공기처럼 내 온 영혼을 훑고 지나갔던 그 시절이 그 음반을 통해 부활하는 놀라운 경험을 맛 보게 한다. 담배 한 개비나 쓴 소주 한 잔으로 달랠 수 없는 허기, 주먹으로도 막을 수 없는 그 지독히 허전 한 구멍을 손때 묻은 음반을 어루만지며 듣는 음악으 로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디지털 파일로는 불 가능한 일이다. 겨울이면 스웨터처럼 꺼내 두고 듣는 음반 ‘듀크 조단 트리오(Duke Jordan Trio)’의 『Flight to Denmark』 LP는 결혼 전 한 여성 직장동료가 크리 스마스 선물로 내게 준 것이다. 날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난 이미 결혼할 여성이 있었다. 수록곡 「No Problem」을 들으면 그녀의 곱던 얼굴은 물론 그녀에 게서 나던 체취까지 떠오른다. 난 이 음반을 코에 대고 킁킁 냄새까지 맡는 변태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아, 물론 아내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후훗. ◀ 듀크 조단 트리오(왼쪽)와 앨범.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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