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법무사 12월호
2,000억 달러의 피해를 가져왔으며, 그 후, 1939. 9. 3.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전사자 2,206만 명, 부상자 3,440만 명으로서 1차대전의 3배에 이르고 1억1,000만 명의 장병이 전쟁에 동원되었다. 특히 패전국인 독일은 많은 고난을 받았으며, 비 록 전승국이라고 하나 독일에 못지않은 곤경에 빠 진 프랑스에서는 악착한 현실, 유한한 인생에 대한 깊은 충격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안으로 현실파악의 길을 더듬게 되어 이를 두고 ‘불안의 철학’이라 하는 이도 있었으며, 이는 한마디로 진정한 자기내부로의 귀환이라는 향내적 태도인 것이다. (3) 실존주의 철학의 개념 ‘실존(Existenz)’이란 말은 ‘밖에 나타난다’는 의미 의 라틴어의 ‘에크시스터(exister)’에서 온 말인데 본 래의 뜻은 ‘본질에 대한 현실존재’라는 뜻이다. 현실 존재는 물건인 경우는 상대적이지만, 인간의 존재에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즉, ‘나’라는 인간은 타인과 절대로 교환할 수 없 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따라서 ‘실존(實存)’이란 인간 본래의 자기라는 뜻이요, 실존주의란 불안과 위기에서 자기를 상실한 인간이 본래의 자기 주체성 을 회복한다는 주의, 주장이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us) 또는 실존철학 (Existential Philosophy)란 19세기 중엽 키에르케 고르가 헤겔의 사변적 관념론이 실존을 망각하였다 고 비판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주체성이 진리” 라고 하여 자기의 생명과 영혼을 구제할 수 있는 것 은 객관적 진리가 아니고, 주체적 진리라 하였다. 즉, 주체적인 자각과 행동이 실존주의의 근본문제라 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향락 속에서 자기를 찾는 미적 실존, 양심에 의하여 자기를 지키는 윤리적 실존, 신앙에 의해서 본래적 자기를 찾으려는 종교적 실존 등의 3 단계가 있는데, 종교적 실존에 의하여 비로소 인간은 본래의 자기 즉, 실존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후 보메(Boehme 1575~1620)에서 비롯된 독 일의 신비주의가 대륙의 합리론, 관념론으로 이어지 고 이것이 본격적인 실존주의 사상으로 진전되었다. 실존주의 철학에 대하여 야스퍼스(Jaspers)는 “어중 간한 철학은 현실을 떠나버리지만 완전한 철학은 현 실로 인도한다”(Existenzphilosophie, s85)라는 말 을 남겼다. 2. 키에르케고르 (Soren A. Kierkegaard, 1813~1855) (1) 생애 키에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의 부유한 모직상 인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하녀에 서 후처로 들어왔는데 전처 사후 1개월 만에 결혼하 여 키에르케고르를 5개월 후에 출산하였다. 청년시 절에 2명의 형과 3명의 누나가 죽고 그 후 어머니가 사망하여 가정의 비극으로 연결되었는데, 아버지는 이를 자신의 죄에 대한 신의 징벌로 받아들였다. 키에르케고르는 27세에 오르센이란 처녀와 약혼 을 하였으나 1년 후에 스스로 파혼을 선언했는데, 이는 가족들의 갑작스런 사망이 신의 저주에 의한 것이란 아버지의 망상에 자극받아 아름답고 순수한 약혼녀에게까지 죄의 화가 미치는 것을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장 래에 언젠가는 그녀와 다시 재회할 것을 기대하면서 신앙의 힘에 의해 신으로부터 구제받으려 했다. 그는 『반복』, 『철학적 단편』, 『현대의 비판』, 『죽음 에 이르는 병』 등의 뛰어난 저서를 남겼다. 말년에 그는 대중신문과의 충돌과 국교회와의 대립으로 가 두에서 졸도해 사망했는데, 약혼녀 오르센에게 자신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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