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아들의 일기, “지루한 일상이 너무 싫다” 예전에 자기만의 서재가 있는 사람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셋인지라 항상 안방 침 대나 거실 소파에서 뒹글거리며 책을 읽었다. TV로 스포츠중계를 보다가 책을 읽었고, 거실에 적바림 할 수첩을 준비해 두었다가 무언가를 적을 때마다 심심한 막내는 슬며시 다가와 헤살짓곤 했다. 큰딸과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에 유학 (遊學)하면서 지금은 둘째가 쓰던 방을 서재로 사용 하고 있다.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자고 밤새워 글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가 그 방에서 우연히 둘째가 중학교 3학년 때 쓴 일기를 읽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충격적이었 다. 아들아, 미안하다. 너의 허락을 받지 않았지만 한 치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일기 일부를 공개한다. 2006년 11월 00일 학교 가는 길에 PC방에 들렀다가 40분 지각했다. 물론 이 사실이 들통 나지 않았다면 아빠 엄마에게 혼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담임선생님께서 내가 조회 때 까지 오지 않자 집에 전화를 한 것이다. 2006년 11월 00일 오늘 또 사고를 쳤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허락도 받 지 않고 3, 4교시 무단결과를 했다.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공부도 않고, 하 는 일도 없이 말도 안 듣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내 자신이 싫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매일 매일이 똑같다. 학교에 와서 공부하는 것도 아 니고, 노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나 때우다가 하루가 간다. 지루한 일상이 너무 싫다. 내일은 오늘과는 다 른 새로운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데쟈뷰- 어디선가 많이 본 글 같다. 어디서 읽었 더라? 그렇다.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나는 책장에 꼭꼭 숨어 있던 이 책을 꺼내들고 미친 듯이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을 넘기자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나같이 엄청난 거짓말쟁이는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다. 만약 내가 잡지 같 은 것을 사러 가게에 갈 때, 누군가 어디 가느냐고 물 어본다면, 나는 오페라를 보러 간다고 거짓말을 한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스펜서 선생에게 운동기구를 가지러 체육관에 간다고 말했지만 그건 백퍼센트 거 짓말이다. 체육관에는 내 운동기구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펜시 고등학교에서 네 과 목을 낙제하고 네 번째로 퇴학을 당한 후, 역사를 가르치는 스펜서 선생님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갔다 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체육관에 가야 한다고 핑계를 대고 선생님 집을 빠져나오면서 토로하는 적나라한 고백이다. 무엇이 우리를 반성케 하는가? 임 익 문 ■ 법무사(전라북도회) 법무사의 서재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 』 2014년 1월호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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