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2월호
67 법무사의 서재 “난 지금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내게 어떤 짐을 챙겨야 하는지 듣고 싶어하지.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거야.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모리는 기도문처럼 믿는 시 구절을 인용하며 끝을 맺었다. “어떤 기분이죠? 죽어가는 것은?” 그 후 나는 가끔 그가 혼자 살고 있는 월세방에 생수 박스를 들고 찾아가곤 했다.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지하 천 미터에서 길어 올린 미네랄이 풍부 한 천연암반수라는 선전문구에 막연한 희망을 걸었 는지도 모른다. 뱃 속이 뒤틀려 아픈 고통을 참을 수 없을 때에는 한 밤중에 빈 들판에 나가 몇 시간씩 헤매다 돌아온 다고 했다. 그즈음 그의 눈은 체념에 어린 듯 더욱 깊어졌고 뼈마디는 바싹 말라갔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설파했거니와 그 는 절망하고 있었고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파 주 어딘가로 일하러 떠난다고 했다. 나는 파주로 계 속 생수병을 보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던 모리 교수는 우리나 라 병명으로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筋萎縮性側索 硬化症)’이라고 하는 루게릭 병에 걸린다. 척수신경 또는 간뇌의 운동세포가 서서히 지속적으로 파괴 되어 이 세포의 지배를 받는 근육이 위축되어 힘을 쓰지 못하게 되는 원인 불명의 불치병이라고 한다. 전 모비스의 농구선수였던 박승일 코치가, 그리고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스티브 호킹도 이 병을 앓고 있다. 이제 죽어가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모 리 선생님이 답할 차례다. ‘살아 있는 장례식’을 치 르기 위해 선생님댁에 모인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모리 선생은 말한다. “난 지금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내 게 어떤 짐을 챙겨야 하는지 듣고 싶어하지.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 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거야. 서로 사랑하지 않으 면 멸망하리.” 모리는 기도문처럼 믿는 시 구절을 인용하며 끝 을 맺었다. K가 파주로 떠난 지 한 달쯤 됐을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생수를 그만 보내줘도 된다고. 지금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데 나중에 연락하겠다 고. 그것이 K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였다. 그로부 터 얼마나 지났을까, 하마 아득한 것 같기도 하고 한 달이 채 안된 것 같기도 하고 내 정신도 혼미하 다. K의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아 침 오빠를 화장하여 만경강에 뿌린다고. 화장터에서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다. 여든이 넘 은 K의 어머니는 내 두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아들이 죽기 전, 대학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래도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옆에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아들은 가끔 내 얘기를 했는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던 자신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 넣 어 준 친구였다고, 그래서 꼭 한 번 보고 싶어서 연 락했는데 이렇게 와 주어서 고맙다고. 사람이 절망처럼 막막해 진다는 것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죽음 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모리 선생님의 건강한 웃음 이 그리워졌다. 푸르고 푸르른 그대를 사랑하노라. 푸른 바람, 푸 른 나뭇가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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