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2월호
하 철 우 ■ 법무사(대구경북회)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 “ 큰아빠! 이음악…참슬퍼! ” 음악과인생 “선행학습 안 시킨 내가 잘못한 걸까요?” 지난해 설날. 차례를 지내고 식탁에 둘러 앉아 나 물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고 탕국을 한 모금 넘기기를 반복하며 우리 가족이 젓가락질 한 것들은 차례 음 식만은 아니었다. 경기침체, 구조조정, 취업난, 조 기유학, 사회 양극화 등등, 뉴스에서 귀에 딱지 앉 도록 들어왔던 그 들으나 마나한 이야기들이 흘러 갔고 나는 곧 무료해졌다. 밤잠을 설쳤는지 서울서 내려 온 둘째 아우의 큰 아들놈은 아침상을 물리자마자 혼곤히 잠에 빠졌 고, 아이의 머리를 무릎 위에 눕힌 아우는 내년에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녀석의 국어, 수학, 영어 실 력이 또래와 비교해서 많이 뒤쳐진다고 고민을 토 로한다. “아이를 상상력이 풍부하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이 며, 상대방을 배려하고 예의를 아는 사람으로 키우 고 싶었어. 어린 시절엔 삶의 어둡고 무거운 측면보 다는, 그 가벼움 -친구들과의 놀이, 부모들과의 교 감을 통한 정서적 안정,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고마 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지성보다는 인성교육에 치중해 왔는데….” 아우는 이제 와서 소신껏 지켜왔던 교육관이 잘 못된 것은 아닌가, 회의가 든다고 했다. “형! 열 살짜리가 한 번에 수 백만 원 하는 캐나다 언어연수를 다녀오고, 원주민 교사들과 영어수업을 하고, 대학원생으로부터 고액과외를 받지 않으면 도태되는 교육현실, 초등학교 때부터 특목고, 더 나 아가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엄연한 실제상황, 이건 뭐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된 거 아냐?” 이런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주는 일은 참으로 어 려운 일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네 아빠 직업은 뭐니? 어떤 차를 타고 다니니?”, “얼마짜리 과외 하니?”, “유학은 언제쯤 갈 거니?”, “네가 갖 고 있는 명품은 뭐니?” 식의 대화가 주제인 아이들 에게 우리 어른들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가난하더라도 성실하고 똑똑한 아이라면 좋은 대 학에 들어가고 그래서 자수성가 금의환향할 수 있 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아이의 부모가 어느 동네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갖고 사느냐에 따라 벌써 그 아이의 미래는 어느 정도 결정되어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이,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전(全)지구적 경쟁체제 속에서 아슬아슬한 속도 로 치달리는 세상의 변화, 이 무서운 질주들을 무어 라 불러야 할는지. 과연 이런 속도전 속에서 인간다 움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우리가 참된 희망을 가 져볼 수는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우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이가 깨어났 다. 유난히 나를 따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아파트 놀이터로 나가 함께 연을 날렸다. 세찬 바람이 하늘 끝까지 가오리연을 올려 보냈다. 그런데, 놀이터 한 구석에 어림잡아도 여든은 되 어 보이는, 몸집이 아주 작고 깡마른 노인이 추운 『 』 2014년 2월호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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