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2월호
71 문화가 산책 ●연주회 말러의 ‘영광과 절망’고스란히 담은, 「교향곡 10번」 말러(1860~1911)는 오스트리아의 영토였던 보헤미아 지방에서 유태계 부모의 둘째로 태어났고, 15세 때 빈(Wien) 음악원에 입학해 음악을, 이후 빈 대학에서 역사, 철학 등을 공부했다. 1880년대에 지휘자로 데뷔하여 빈, 프라하, 라이프치히 등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지휘했고,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와 베버의 오페라 연주 등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890년대 후반, 빈 궁정 가극장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던 중 특 유의 완벽주의와 비타협적 태도로 마찰을 빚어 사임한 후, 1907년 미국으 로 건너가 메트로폴리탄, 뉴욕 필의 지휘자를 역임하였다(사후 50년이 되 는 해에 뉴욕 필을 이끄는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그를 기리는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생전에는 오케스트라의 명지휘자로 이름이 높았지만, 사후에는 100년이 조금 넘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9개 (?)의 교향곡 등을 작곡한 작곡가로 더 인정받고 있다. 그가 생전에 작곡을 마친 교향곡은 1번(거인)부터 9번 까지였고, 10번 교향곡은 제1악장의 대부분과 나머지 악장의 일부만이 육필(肉筆) 악보이다. 여러 보필(補筆) 중, 영국의 데릭 쿡(Deryck Cooke)이 만든 「연주 가능본」이 현재에 들어 가장 충실하고 설 득력 있는 판본으로 인정받고 있고, 이번 공연도 그의 5악장 판본을 연주한 것이다. 이 10번 교향곡의 스케치 와 이듬해 말러의 죽음 사이에는, 부인 알마의 부정(不貞)과 말러의 분노와 용서 및 고뇌, 그 상대가 다름 아닌 ‘바우하우스(Bauhaus)’의 설립자로 유명한 건축가 그로피우스(W. A. G. Gropius)라는 점, 그 충격으로 심리 상담을 받았던 의사가 프로이트(S. Freud)였다는 점, 말러가 자필 악보를 파기하라고 남긴 유언을 거스르고 보 필을 통한 전곡의 완성을 시도한 사람이 다름 아닌 미망인 알마였다는 점 등 놀라운 사실들이 점철되어 있다. 필자는 영광과 절망의 정점을 모두 경험한 말러의 죽음 직전의 의식을 담은 이 교향곡 10번을 듣고는 도저 히 견딜 수 없어서, 이번에는 바로 다음날 KBS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말러 교향곡 1번」을 들으러 나섰다. 1번 교향곡의 표제인 ‘거인(Titan)'은 말러가 생전에 직접 붙인 제목이다. 원래 5악장으로 된 교향시로 작곡되었으 나, 계속되는 흥행의 실패와 평단 및 관객들의 혹평으로 말러는 수차에 걸쳐 개정을 했고, 2악장(Blumine)과 표제는 빼버렸다. 관현악의 모든 요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배치, 끊어질 듯 반복되는 주제의 변용과 확장, 장난스런 패러디와 심연에 이르는 비장함의 결합, 이질적인 것의 혼용과 끊임없는 불협화음의 폭발 등 이후의 말러 교향곡의 특징 대부분이 이미 이 1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그너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한 작곡가의 작품을 계속해서 듣다보면, 그의 생애와 주변 배경에 대해 모르더라도, 자연 스레 그 정수(精髓)에 접근하게 된다고 한다. 아는 만큼 들리는 것이고, 듣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다. 백견(百 見)이 불여일청(不如一聽)이라고 할까? 말러 교향곡의 마지막과 처음을 연이틀 연달아, 그것도 국내의 최상위 를 다투는 두 군데의 교향악단에서 나란히, 또한 멋진 협연자와 연주하는 바이올린 협주곡 두 편과 함께 듣는 호사를 누렸으니, 오디오의 마련은 또다시 내년으로 미루어야겠다. 다음 달에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세 악기별 로 연주한다고 하니, 이런 기회는 놓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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