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3월호
73 법무사의 서재 『관촌수필』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모두가 농부들로서 배운 것으로나 가진 것으로나 모두 부족하기 짝이 없는,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이다. 이문구 선생은 그들의 삶을 알려내며, 그들과 대칭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사회정의를 깨우쳐주려 한다. 이상에다 입던 옷가지와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얼마 씩을 얹어 구호품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사 채업자 노랭이 황선주가 사고를 낸다.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통해깨우치는 사회 정의 황선주는 이재에 밝고 돈푼이나 만지며, 억대를 웃도는 농토를 소유하고 마을사람들에게 꼭꼭 5부 이자를 놓아 돈놀이 하는 낙으로 사는 작자다. 그가 수재의연금 600원 중 40원을 깎아 560원을 낸 것 이다. 이유는 지난 장날 쌀금을 자기 나름대로 계산 해 보니 40원이 더 많더라는 것. 그리고 거기에 입 다만 남대문표 빤스 한 장을 덧붙인다. 아니꼽게 볼 수밖에 없는 마을 사람들은 황선주 의 남대문표 빤스를 마을회관 앞마당 옆 밭고랑에 허수아비 꾸미듯 바지랑대로 말뚝을 박고 걸어 놓 는다. 황선주가 따질 것에 대비해 마을사람들은 “사 내 불알만 가려 주고 여자는 뱃길 수 읍서 여자 것 이 생길 때까장 짝 채울라고 걸어 놓았다”며 내숭을 떨고, 또 마을 이장은 “수재민이 남대문 열어 놓고 댕길깨미 남대문표 빤스를 부주헌디두 우리게 하나 틸디” 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이에 뒤질세라 홍 씨도 “그런 회관 앞 빤스는 느 티울 깃발이라구 게다 걸어 놨던감. 여북 째구 쪼 달리면 안식구는 그 흔헌 삼각빤스 한 장 못 걸치고 살았것어. 오죽했으면 사내 빤스 하나만 작재기로 내놨을 거여” 하고 거든다. - 「우리 동네 황씨(으악 새 우는 사연)」 중. 『관촌수필』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모두가 농 부들로서 배운 것으로나 가진 것으로나 모두 부족 하기 짝이 없는,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이다. 이문구 선생은 그들의 삶을 알려내며, 그들과 대칭 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사회정의를 깨우 쳐 주려 한다. 그것은 선생의 사명이다. 알린다는 것은 고발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이문구는 징 벌을 원하는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통로를 통해 서로의 화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립되는 사람들끼리의 화해는 어느 시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 다. 선생께도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밖 에 없었던 가슴 아픈 한이 있다. 다름 아닌 미당 서 정주와의 관계다. 미당은 명천 선생의 결혼 주례를 서신 분으로 그 에게는 잊을 수 없는 분이다. 명천은 줄기차게 미당 을 찾아다니며 후배들에게 잘못된 과거와 80년대 초 잠실 체육관에서의 대통령 취임식 축하 연설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런 자신을 미당이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고, 미당 역시 사과하지 않는 이상 명 천이 자신을 문단의 진정한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미당은 문단의 영원한 숙제를 끝내 풀어주지 않은 채, 2000년 12월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따라 2003.2.25. 명천도 세 상을 떠나고 말았다. 과연 이들의 화해는 어떻게 된 것일까? 미당의 시 「귀촉도」의 시구처럼 지금 그들이 맞고 있을 서역 구만리 저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서로 사과하고 화해 했을까. 이 땅에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올바른 화해 는 대체 무엇일까. 문학평론가 김인환이 이문구가 꿈꾸고 바라는 화해를 ‘비극적 비전’이라고 지적한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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