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3월호

에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르헨티나 할머니 가 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의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합니다)」 를 신청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me ha dado la risa y me ha dado el llanto. asi yo distingo dicha de quebranto los dos materiales que forman mi canto. (행운과 불행을 구별하게 해준, 웃음과 울음을 내 게준, 삶에감사드립니다.) 현실의 슬픔과 고통, 탁구공처럼 가벼운 걸까? 소 취하를 앞두고 그녀가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이혼하지 않겠다. 다시 한 번 살아보겠다. 해피엔 딩으로 내 삶을 마치고 싶다.” 나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분노로 치를 떨었다. 집안 어른들도 그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역력했고, ‘소송과 관련된 일들은 없었던 것 으로 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나는 거칠게 반박 했지만, “당신은 당사자가 아니지 않느냐”란 메아 리만 돌아왔다. 빌어먹을 ‘해피엔딩’. 나는 믿지 않는다. “고통이 너희들의 키를 한 자 도 늘려주지 못할지니 어리석은 자들이여, 고통을 가볍게 공중에 띄워버려라.”라는 식의 어법 말이 다. 이런 달관의 제스처에 신물이 넘어온다. 그렇 다. “생이 별거야? 한 판 제치는 거지”하는 식의 섣 부른 초월을 마치 대단한 훈장인 양 찬양하는 ‘고상 한’ 인간들이 존재하는 한 슬픔과 고통은 결코 극복 되지 않는다. 대신 그 남자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설 자리만 늘 비어있을 게 틀림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베토벤의 심각한 데스 마스크 속에 항상 진실이 있다는 건 아니다. 현실 의 슬픔, 고통이 탁구공처럼 가볍게 튕겨버릴 수 있 는 성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슬픔은 슬픔 속에서 극복되고 울음은 울음 속에서 극복되어야 한다. 왜 ‘집안 어른들’은 섣불리 그녀의 슬픔에 개입함으로 써 상처를 적당히 감싸려는 것인지, 그들에게 과연 그런 특권이 있기나 한 것인지. 증오는 사랑의 반대말이 아니다. 증오를 바탕으 로 참사랑 참삶을 일궈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믿 는다. 개인의 우주에 도사리고 있는 상처, 그것이 치유되지 않는 한 유토피아는 남의 잔치의 흥성거 림과 같은 것이라고. 불의와 불행에 분노하고 증오 로써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삶만이 감사할 만한 삶이 될 수 있다. 소를 취하했다. 가증스런 웃음을 가득 머금은 남자 는 가련한 여인과 친지들 앞에서 개운치 않은 화해의 포즈를 취할 것이다. 때리는 놈한테는 맞받아쳐야 한다. 나는 그 잘난 해피엔딩에 침을 뱉는다. 75 음악과 인생 ▲▶ 메르세데스 소사의 앨범. 메르세데스 소사 소사는 1935년 아르헨티나의 투쿠만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지방 방 송국이 주최한 아마추어 음악 콘테스트에서 입상을 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검열이 극도로 심했던 독재 시절이어서 그녀의 노래들은 방송 금지는 물론 레코드 취입까지 금지당했다. 소사는 그에 대한 분노로 독재정권에 저항했다. 1979년에는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자신의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강제적으로 쫓겨났다가 1982 년에 다시 귀국했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는 망명의 고통, 정치적 폭 력에 대한 공포, 라틴 민중에 대한 억압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 등의 내 용을 담고 있다. 2009년 10월 4일 사망했다. youtube에서 ‘Mercedes Sosa'를 치면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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