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3월호
그런데, 이번 「아이다」 공연에서 아이다 역의 임세경, 라마데스를 맡은 신동원, 암네리스의 이아경, 아모나스로의 김승철 등 대부분 출연자들의 가창력은 오랫동안 갈고 닦은 내공에 더해 공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해 몸과 목을 조율하며 준비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노래뿐 아니라 인물에 몰입되어 보여주는 집중과 연기는 전문 배우의 표정과 눈빛에 버금가는 것이었고, 특히 테너와 바리톤, 소프라노와 메 조소프라노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화성과 긴장은 작곡가의 배치 덕도 있겠지만 참으로 극의 정서를 고조시키는 멋진 앙상블(ensemble)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오페라 전문 성악가에 대한 기대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우선 이들은 거의 모든 작품을 이탈리아어로 노래한다. 동양인이 생김새와 모국어를 달리해서 소화해야 하고, 관객은 별도의 모니터를 통해 자막과 무대를 번갈아 보아야 한다. 원치 않는 소외효과(疏外效果)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보여준 고 도의 몰입과 에너지의 투사는 우리를 이천 년 전의 이집트로 데리고 간 것 같은 환각(illusion)을 선물해 주었다. 인간의 ‘광기’ 속에도 이어지는 영원한 ‘사랑’ 이야기 단장과 연출자는 이 극(劇)의 주제로 ‘광기(狂氣)’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배경 속에 서 인간이 느끼는 극단적인 정서로, 이집트 백성들과 사제들이 가지는 극단적인 애국심과 종교심, 에티오피아 노예들의 죽음의 공포, 3명의 주인공이 벌이는 사랑과 질투의 드라마가 모두 광기의 한 측면이라는 것이다. 이는 연출의 가이드라인이기보다는 베르디의 원작이 갖고 있는 스토리와 악보 자체에서 드러나는 기승전결 의 안배이기도 하다.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지상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죽음을 통해서라도 이루려 하는 주인공들의 애타는 갈구와 희생은 우리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 야기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면, 그 유명한 「‘개선행진곡」이 나오는 제2막 2장의 안무가 말 그대로 개선(凱 旋)하는 라다메스와 이집트군의 모습이 아닌, 끌려와 핍박당하는 에피오피아 포로들의 고통 쪽에 치우쳐 정서 상 조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작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패자의 고난보다는 승자의 축제적 분위 기가 더욱 드러났으면 어떨까 싶었다. 또한, 피라미드의 형상화까지는 좋았으나 스핑크스나 파라오의 권위 등 의 도움을 주는 상이나 대도구를 활용하지 못하고 벽에 붙인 밋밋한 그림이나 사진으로 대체해 버린 점은 아쉬 웠다. 그러다 보니 무대 공간을 깊숙이까지 활용하는 여유와 입체감이 부족해 보였다. 전쟁에서 이겨도, 아버지를 잃어도, 커다란 형벌을 받아도, 이 삶이 끝나도, 사랑하는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덤 속에서 함께 노래한다. 두려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의 사랑은 현재진행형인 것 이다. 우리는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신의 가호와 평화가 필요한 것은 불쌍한 암네리스이다. “잘 있거라, 이 땅아! 푸르른 들판이여, 안녕… 고통 속에 사라진 환희의 꿈이여! 우리에게 하늘 문이 열리고, 떠다니는 영혼들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비추이네…” 77 문화가 산책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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