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5월호
수상 등기소가는길 - ‘밥벌이의 신성함’에 대하여 배 영 원 ■ 법무사(서울북부회) 사느냐죽느냐, 택시를타느냐걸어가느냐 오전에는 점포명도 등 청구의 소장과 그 점포에 대한 임차인의 점유이전을 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두 건 모두 번화가에 있는 건물의 5 층 부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소송이어서 소송물 가격이 상당하고 그에 따라 법무사의 수임료도 제 법 되어 일손이 경쾌하게 돌아간다. 아니 수임료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일을 하고 있 다는 바로 그 이유로 나의 몸뚱어리 전체가 활기에 차 있는데 거기에 덩달아서 수임료까지 따라오니 이 지독한 불황기에 이 어찌 기쁘지 않을쏘냐! 오후에는 도봉등기소를 다녀와야 한다. 미스 김 이 등기소에 제출할 근저당권설정등기신청서를 건 네주는데 서류를 들춰보니 봉투가 하나 끼어 있다. “웬 봉투?” 하고 내용물을 보니 만 원권 지폐 한 장 이 들어 있다. 도봉등기소까지 가려면 전철에서 내 려 1.5km를 걸어야 하는데 아마도 무리라고 생각 한 착한 미스 김이 택시를 타고 가라고 신경을 쓴 모양이다. 돈을 지갑에 챙겨 넣고 출발한다. 용마산역에서 7호선을 타고 도봉산역 방향으로 가다가 노원역에 서 하차하여 지상으로 올라간다. 자, 여기서부터 는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던 문제 하나를 풀어야 한 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거창한 생각이라도 되는 것 처럼 들릴 수 있으나, 사실은 미스 김이 준 교통비 로 택시를 탈 것이냐, 아니면 그냥 걸어가 왕복요금 5,000원이라도 아낄 것이냐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는 말이다. 과거 일이 많았던 시절에는 시간이 곧 황금이라 등기소에 서류를 제출하고 빨리 사무실로 돌아가 다시 다른 등기소로 가야 했으므로, 두 말 할 필요 없이 바로 택시를 탔다. 하지만 요즘같이 신문이나 뒤적이고 있는 형편에서는 5,000원도 교통비로 써 버리기는 아깝다. 게다가 걸으면 건강에 좋고, 마침 오후 3시 이곳 노원구의 날씨는 산책하기에 최적이 다. 결국 이 좋은 날씨에 차안에 들어 앉아 있기는 아쉽다는 생각에 걷기로 한다. 노원구청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 도봉경찰서 앞을 지나간다. 그런데 웬 걸! 이럴 수가 있나. 오른쪽 고 관절 수술부위가 무지근하게 아파온다. 아하! 그렇 구나. 돈을 아껴 좋다고만 생각하고 걸었는데 고관 절 부위가 걸어가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웃 고 있구나. 나는 1991년 7월 15일 경희의료원에서 오른쪽 고관절을 인공관절로 바꾸는 큰 수술을 한 일이 있 고, 2007년에는 다시 인공관절을 새로 바꾸는 수술 을 한 적이 있어 오래 걸으면 무지근하게 아파온다. 오래 걸을 일이 있으면 사전 조치를 철저히 하곤 하 는데, 그 사정을 깜빡 잊었으니 아파오는 것이 무리 는 아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기왕 걷기 시작한 것 중도에 택시를 탄다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을 모양 『 』 2014년 5월호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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