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5월호
인문학의창 유머와열정의패러독스, 「열하일기( 熱河日記 )」 이 상 진 ■ 법무사(서울중앙회) ·본지편집위원 ·법학박사 ▶열하일기란? 1780년 오월, 44세의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영조13)~1805(순조5)]은 6개월에 걸쳐 중원 대륙을 여행할 기회를 얻는다. 팔촌형 박명원(영조 의 딸 화평옹주의 남편)이 청 건륭제의 만수절(70세 생일) 축하사절로 가게 되면서, 개인 수행원(자제군 관) 자격으로 대장정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280여 명에 이르는 사절단 일행은 5월 25일에 한 양을 출발하여 8월 1일 북경(北京)에 들어갔다. 그러 나 황제는 열하(현재 하북성 승덕)의 피서 산정에 있 었다. 일행은 서둘러 장성을 넘어 열하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6일간 머무르며 황금궁전 찰십륜포에서 티벳의 활불 판첸라마도 접견하고, 코끼리·요술놀 이 등 이색 체험도 하였다. 그리고 다시 북경을 거쳐 갔던 길을 되돌아와 10 월 27일에 귀국, 선정전(宣政殿)에서 복명하였다. 바로 이 6개월간의 숨 가쁜 여정의 기록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백과사전 스타일의 여행기, 『열하일기』다. 청을 여행한 기행문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 다. 그런데 유독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는 정해진 경로를 왕복하는 이전의 여행과 는 달리 북경에서 북으로 700리나 떨어진 미지의 땅, ‘열하’까지 갔다 왔으며, 열하의 이국적 풍광과 체험이 당대 조선의 대문호 연암의 필치에서 생생히 되살아났을 뿐 아니라 이 여행기는 이질적인 대상들 과 뜨거운 ‘접속’의 과정이고 침묵하고 있던 ‘말과 사 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굴’의 현장이며, 예기치 않 은 담론들이 범람하는 ‘생성’의 장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정조가 자신이 추진하던 문화정책(문체 반정)에 위배되는 대상으로 『열하일기』를 지목하여 반성문을 올려 속죄하라는 하교를 내렸기 때문이다. 『열하일기』는 지어진 당시부터 국왕까지 관심을 보 인 베스트셀러였으며, 지식인 내부에서 색다른 문체 (글쓰기 방식)인 연암체로 파문을 일으켰다. ▶다산과의관계 『 』 2014년 5월호 66
Made with FlippingBook
RkJQdWJsaXNoZXIy ODExNjY=